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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에이즈환자 돌보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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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봉사활동 중인 박영자씨는 “힘든 환자들을 돌봐주고 가는 길이 오히려 기분 좋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1999년 11월 5일. 박영자(73·여)씨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사는 에이즈환자 유수길(가명)씨를 돌봐주고 오는 길이었다.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앞을 지나는데 ‘소원을 보내면 가장 애틋한 사연을 골라 1000만원을 준다’는 이벤트 광고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박씨의 눈 앞에 많은 환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단숨에 엽서 한 장을 채웠다. “저는 지금 에이즈환자를 돌봐주고 오는 길입니다. 1년의 단 하루라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백화점에서 자선 바자회를 열어주면 어떨까요? 저희 호스피스들이 자원봉사를 하겠습니다.”

같은 해 12월 30일, 전화벨이 울렸다. 애경백화점이었다. 백화점측은 “엽서를 보낸 2107명 중 다른 사람을 위한 소원을 적은 건 당신뿐이었다”며 1등 당첨소식을 전했다. 2000년 1월 7일, 박씨는 세브란스병원에 그 1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14일 박씨를 만난 곳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이었다. 박씨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봉사활동을 하러 이곳에 온다고 했다. 호스피스활동은 지난해부터 그만둔 상태지만, 응급실에서 갑자기 임종을 하게 돼 당황한 가족들을 보살펴주거나 말기환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박씨의 몫이다.

박씨가 죽음을 앞둔 환자를 처음 돌본 건 1978년이었다. 먼 친척의 부탁으로 말기 식도암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식사나 목욕 등 일상생활을 도왔다. 그때는 자신이 하는 일이 호스피스활동인 줄도 몰랐다. 92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정식으로 호스피스가 됐다. “누군가 왜 호스피스를 하냐고 물어보면요, 전 유행가 가사처럼 ‘정 때문’이라고 말해요.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고,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아요.” 2001년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호스피스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에이즈환자를 처음 돌보게 됐을 때는 좀 달랐다. “99년에 목사님이 에이즈환자의 호스피스를 부탁했어요. 전 (에이즈환자에 대한)교육을 받지 않아 못한다고 했죠. 사실상 거절이었는데,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어요. 그 뒤 교육을 받게 되면서 기도를 드렸죠. ‘다른 사람들이 에이즈환자를 돌보지 않는다면 저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요.”

 10여년 전만 해도 에이즈에 걸렸다고 하면 모두 곧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호스피스 봉사활동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에이즈=죽음’이라는 것이 잘못된 편견임이 확인되면서 2009년에야 일반 에이즈환자는 호스피스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때까지 박씨는 많은 에이즈환자와 거리낌없이 부대끼며 지냈다.

그동안 박씨가 삶의 마지막길을 동행해준 환자는 500명이 넘는다. 병상수첩도 총 8권. 그가 돌본 첫 에이즈환자였던 유씨를 비롯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던 정세일(가명, 2001년 5월 사망, 당시 38세)씨, 박씨가 직접 관을 들어줬던 김상수(가명, 1998년 12월 사망, 당시 53세)씨 등, 수첩 안에는 그가 만났던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박씨가 지금까지 병원에서 봉사한 시간은 총 2만9453시간. 매년 1000시간 넘게 병원에 머물며 환자들을 돌본 셈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져요. 제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말기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고 싶어요. 특히 죽음을 앞둔 에이즈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시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거기 들어가 마지막까지 그들을 돌보다 삶을 마치고 싶네요.” 

글=양훼영 행복동행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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