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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이영일] 한중어업 갈등 감상법

중앙일보

입력

어부(漁夫)는 바이블 시대부터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되었다. 이런 상상은 여러 명의 어부들이 예수의 제자로 선택된 데서 연유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경험한 어부들은 반드시 평화를 상징해온 것만은 아니다. 삼한(三韓)시대부터 한반도에 출몰했던 왜구(倭寇)들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해적들이었다. 신라시대의 장보고(張保皐)는 오늘의 완도지방에 청해진(淸海鎭)을 열고 중국 해적들을 강력히 소탕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일본은 국가근대화를 이룩하고 동시에 어업도 현대화하면서 왜구라는 이름의 해적은 종적을 감추었다. 현재 한일 간에는 어족자원보호와 어로수역의 범위, 어로방법, 어로종류를 놓고 서로 간에 이해를 조정하는 협의는 지속하지만 일본어부들의 해적행위 때문에 갈등이 야기되는 일은 없다. 적어도 한일양국간의 어로문제는 문명국가적 표준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관행을 정착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중간에는 1000년 전에 살다간 청해진 대사 장보고를 다시 기용해야한다는 국민적 부르짖음이 나올 정도로 중국어부들의 해적행위가 심각의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어부들이 한국의 경제해역을 월경(越境)하여 고기를 잡아가는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같은 바다를 공유하면서 경제수역을 설정하고 있는 국가들 간에 어부들의 사소한 월경은 있을 수 있고 또 어로과정에서 분쟁과 갈등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중국어부들이 떼를 지어 한국의 해역을 넘어와서 마구잡이로 고기를 잡아가고 이를 단속하는 해안경찰에 덤벼드는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작금에 일어난 중국어부들의 한국해경(海警)피살사건은 미리 준비된 폭력의 표현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중국어부들의 이러한 행위는 해적(海賊)행위로 규탄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중양국은 1998년 어업협정을 체결하고 2001년 6월1일부터 협정을 발효시켰다. 문명국 적 표준을 적용한 이 협정을 양측이 준수, 어로행위를 한다면 한중간에는 어업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중국 어선들의 한국수역의 침범은 점(点)이나 선(線)의 형태가 아니고 집단적이고 전면적인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는 단속하는 해경(海警)의 생명을 빼앗는 해적으로 그 행태가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오늘의 중국 어부들에게는 수산자원의 보호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단속의 눈을 피하거나 대항하면서 어종말살(魚種抹殺)을 초래할 남획(濫獲)을 필사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면 중국어부들은 왜 한중양국간의 어업협정을 무시하고 불법어로활동을 자행하고 한국 측의 단속에 저항하면서 필사적으로 어로활동을 감행하는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중국의 어로수준이 세계적 추세인 “기르는 어업”이 아니라 아직도 잡는 어업인데다가 수자원보호라는 문제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남획으로 중국연안에 어족자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 연안해안(沿岸海岸)의 어족자원 고갈은 어느 면에서 보면 자연재해 같아 보이지만 환경문제를 도외시하고 개발정책추진에만 전념했던 중국당국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고 하겠다. 후진타오 주석이 과학적 발전관을 제창하기이전의 개혁개방시기에는 외자도입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공장건립 시에도 환경적 고려를 소홀히 했다. 이 결과 공장폐수, 농업용 폐수가 대량으로 바다 속으로 방류됨으로 해서 어족자원이 말살되거나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중국정부의 사회안전망이 어민생활에 거의 미치지 않고 바다에서 자력갱생하도록 방치되고 있는데도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총량 GDP에서는 개혁개방이전의 세계6위에서 이제 세계 2위, 즉 G2의 반열에 올랐지만 사회안전망을 표준으로 할 때는 아직 G2라고 말하기는 매우 힘든 실정이다. 지금 사회안전망이 농촌지역에 조금씩 펼쳐지는 단계인데 중국의 어업인구는 3000만 명으로, 이들에 대한 교육, 훈련, 어로장비개선, 생활비보조, 학비지원 같은 어로현대화와 사회안전망구축작업은 아직도 국가우선수위에서 한참 뒤져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불법어로문제는 중국정부와 협의한다고 해서 금방 뾰쪽한 해결책이 나온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을 단속할 때는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필요한데 중국정부로서는 어민활동을 단속하고 어업협정 준수를 요구할 채찍은 있지만 당근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어선들 가운데는 무면허 어선이 많아 정부수준에서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따라서 효과적인 행정 통제를 기하기는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가 한중어업갈등을 논평하면서 중국어민들은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고 생계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어민 정상론(情狀論)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중국어민들의 오늘의 상황에 대한 솔직한 표현인 것 같다.

3.

한중간의 어로갈등이 순리로 잘 풀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중국정부의 주요정책이 덩샤오핑(鄧小平)시대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인민생활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서 공산당이 모든 수단을 다해서 인민의 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주장했다. 또 그는 앞으로 강대국 간에는 100년 동안 전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의 대외적 과시보다는 국력의 내실화가 중요하다는 정책표어-자세를 견지하면서 경제건설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작금의 중국은 도광양회 노선을 시효가 지난 원칙으로 평가하고 대국굴기(大國?起)를 지향하고 있다. 도광양회시대라면 사회안전망구축이나 어민 생계보장에 정책의 중점을 두었겠지만 대국굴기시대에는 우주선발사, 인공위성 도킹, 항공모함 건립 등 전략무기개발을 앞세운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정부는 그들의 주권이 동지나해(東支那海)와 남중국해까지를 망라한다는 위력적인 주권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중국민족주의(때로는 애국주의)를 외교의 표면에 등장시키면서 대국굴기(大國?起)를 뒷받침할 업적의 과시를 통해 공산당 1당지배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승복시켜 나가고 있다.

현재 이 노선은 아편전쟁이후 실추되었던 중국의 위상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평가할만한 점이 있다.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의 옌쉐통(閻學通)교수는 중국의 대국굴기란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입장이 국내정책으로 표현되면 사회안전망구축이나 어민 보호 같은 정책목표가 후(後)순위로 밀린다.

또 한 가지 우려는 중국정부가 어부들의 불법어로에 대한 한국정부의 단속능력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상식적으로라면 불법어로를 하는 어부들에게 어업협정준수를 요구함과 동시에 다른 정책적 지원, 예컨대 생계비 보조나 원양어업장려를 위한 자금 지원, 어로현대화를 위한 정책자금 지원 같은 어민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조치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조치가 중국당국에 의해 적극 강구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불법어로에 대한 단속의 강도를 높일 경우 중국은 무역보복 같은 의외(意外)의 조치를 들고 나올 수 있다. 현시점에서 중국정부가 어민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한국의 단속능력을 약화시키게 하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무역보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중간의 마늘 협상에서는 한국 측에도 미숙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중국은 우리 정부가 취한 조치를 훨씬 초과하는 강경보복으로 맞섰던 일이 있었다.

또 최근 동지나해에서 일본이 중국선원을 구속했을 때 중국정부가 희토류의 대일 수출중단을 통해 일본의 양보를 얻어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중국도 주변국들에게 중국경계심을 확산시킬 조치를 함부로 취하기는 힘들겠지만 중국외교의 저돌성(猪突性)이나 우격다짐식의 행태를 본다면 항상 신중한 대처가 요망된다.

최근 Y대학의 M교수는 J신문에 중국이 외교적으로 왕도(王道)를 걷고 있는데 비해 미국이 종래의 왕도를 버리고 아시아에서 패도(覇道)를 추구한다고 비난하는 글을 썼다. 그 교수의 왕도론(王道論)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중국의 대국굴기외교가 왕도인가 패도인가를 올바르게 분석해 보았다면 그런 평가는 안 나올 것이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 중시(重視)정책은 미국의 대선(大選)을 의식한 국내정치적 고려가 큰 것이지만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벌이는 패도적 접근에 대한 견제측면도 있음을 아울러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4.

한중관계는 한국의 국제관계에서 미국과의 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국제관계이다. 적어도 중국의 협조 없이는 우리 모든 국민들이 일일천추 갈망하는 통일달성도 힘들어지고 당면해서 는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유지도 어려울 수 있다. 또 오늘의 2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한중무역에서 우리는 거액의 흑자를 얻고 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다른 이익이 크다고 해서 당장에 한국어민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하고 한국의 주권을 짓밟는 중국어민들의 불법어로를 그대로 눈감아 두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단속은 주권국가답게 철저히 강화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물리적 단속만을 유일한 대책으로 생각해서는 실효를 얻기 힘들다는 점도 아울러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는 현시점에서 불법어로에 대한 단속 장비와 인력을 좀 더 현실의 요구에 맞게 보강해야 한다. 동시에 한중양국은 협의를 통해 중국어민보호를 위한 정책적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은 중국어민을 위한 지원 조처로서 첫째 의료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중국산동성 스다오(石島)에 어민을 위한 병원설립을 지원하고 필요한 의사파견, 의약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중국어민 자녀들에게 한국유학의 길을 열어주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무상유학을 추진, 어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데 한국이 일조하자는 것이다. 수산협동조합의 장학기금설치도 연구해 볼만하다. 셋째로는 중국 어업 현대화를 위한 한중공동어로기금의 설치도 한중간의 공식, 비공식 협의를 통해 추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는 단속제일주의로부터 단속과 시혜(施惠)를 병행하는 정책전환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1000년 전 해상왕(海上王) 장보고는 중국해적들을 박멸시킨 무서운 장군이었지만 그러나 해적들에게 무역을 통해 먹고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는 구세주(救世主)적 측면을 보였다.

굶주린 이리떼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면허(免許)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연평도 일대에서, 소흑산도 근해에서 떼를 지어 몰려오는 바다의 빈민들을 총칼로만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종대왕이 왜구의 출몰지역인 대마도를 정벌한 후 세견미(歲遣米)를 보내주어 그들의 마음을 다스렸던 고사(故事)를 다시 생각하면서 오늘의 한중어로사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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