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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장애인들 도움 나선 ‘소시’ 해외 팬 20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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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수영(오른쪽)과 아버지 최정남씨. 소녀시대의 해외 팬들은 자선 콘서트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최씨가 회장으로 있는 실명퇴치운동본부를 돕기로 했다.

그의 눈은 어쩌면 멀지 모른다. 시각이 점차 좁아지다 실명에 이르기도 하는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개그맨 이동우가 앓은 것과 같은 병이다. 그의 딸은 세계를 누비는 스타지만,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는 딸의 무대를 어쩌면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인 소녀시대의 멤버 수영(본명 최수영·21)의 아버지인 최정남(56) 실명퇴치운동본부 회장 얘기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최씨는 2004년 눈이 자주 침침하고 뿌옇게 보이자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RP 진단을 내리며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고, 최씨는 두려움과 충격에 빠졌다. 수소문 끝에 같은 질환을 앓는 환우들의 모임인 한국 RP협회(현 실명퇴치운동본부)를 찾게 된다.

 “당시 안과 의사들조차 RP라는 질환 자체에 대해 잘 몰랐어요. 치료는 두말할 나위 없고요.”

 최씨는 2006년부터 단체의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현재 이 단체의 회원은 5000여 명, 국내 RP 환자는 1만5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딸 ‘소녀시대’ 수영=최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RP 진단을 받고도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가족들은 “눈 먼 자를 눈뜨게 하는 기적이 가능하다”며 서로 응원하며 힘든 시기를 함께했다.

 2007년 8월, 막내 딸 수영이 ‘소녀시대’로 데뷔했다. 최씨는 “밖에선 화려한 스타지만, 가족들에겐 막내답지 않게 속 깊고 가정적인 아이”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바쁜 스케줄에도 늘 아빠의 근황이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며 가족들을 챙긴다고 한다.

 수영은 지난해 실명퇴치운동본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오던 중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소녀시대 멤버인 티파니·유리·서현은 최씨의 얘기를 전해 듣고 수영과 함께 뜻을 모아 지난해부터 종종 본부에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K팝이 맺어준 인연=최씨는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RP를 비롯한 퇴행성 망막질환의 치료 기술이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입니다. 미국에서 일부 시각장애에 대한 유전자 치료가 성공을 거뒀고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세포 치료도 임상에 돌입했죠.”

 최씨는 지난해 2월 서울대병원 안과와 연계해 ‘퇴행성 망막질환 연구회(회장 유형곤 교수)’를 창립하기도 했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연구 기금이다.

 최근 그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소녀시대의 해외 팬 커뮤니티인 ‘소시파이드’ 회원 등이 내년 여름 미국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자선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실명퇴치본부에 연구 기금으로 기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것. K팝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가수 등이 무대에 오르게 될 예정이다.

 소시파이드는 그동안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기금을 기부하는 등 선행을 펼쳐왔다. 그러다 소녀시대의 한 한국팬을 통해 최씨를 알게 됐고, 이왕이면 소녀시대의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기부금을 보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호주의 한 공연기획사 CEO 팬 등은 22일 서울에서 최씨와 만나 향후 진행 사항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세계로 퍼져가는 K팝의 또 다른 힘이다.

 “소녀시대를 계기로 외국인들이 이 작은 한국이란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시각장애인을 돕는다니 참 놀랍고 감사한 일이죠. 정치·경제계도 못했던 일을 해낸 딸아이들이 대견할 뿐이에요.”

송지혜 기자

◆소시파이드(Soshified.com)=2008년 만들어진 소녀시대의 해외 최대 팬 커뮤니티. 회원은 20만 명이 넘고 운영진만 176명이다. 소녀시대의 줄임말인 ‘소시(soshi)’와 영어 ‘만족하다(satisfied)’를 합친 말이다.

소시파이드(soshified) 기부 활동

2011년 7월 ?일본 지진피해 복구 기금으로 일본 NGO 단체 ‘피스보트(Peace Boat)’에 3만 3500달러(약 3900만원) 기부. 32개국 480명 참여

2010년 8월 ?소녀시대 데뷔 3주년 기념해 5650달러(약 650만원) 모금, 아프리카 빈민국에 우물 기증. 282명 깨끗한 물 혜택

2009년 9월 ?효연 생일 기념해 한국 팬클럽 ‘화수은화’와 연계, 인천시 푸드마켓에 500만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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