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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노점상, 고문에 숨진 소년 … ‘아랍의 봄’ 순교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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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 된 튀니지의 무함마드 부아지지 분신사건이 17일(현지시간)로 1주년을 맞았다. 최근 선출된 몬세프 마르주키 튀니지 대통령이 이날 시드부지드에 있는 부아지지의 묘소를 찾아 그를 추모하면서 헌화하고 있다. [시드부지드 AP=연합뉴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Arab Spring)’을 촉발시킨 튀니지의 청년 노점상 분신사건이 17일로 1년을 맞았다. 무함마드 부아지지(Mohammad Bouazizi)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수도 튀니스 인근 시드부지드에서 무허가 과일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당국의 단속으로 영업을 못하게 되자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 분신은 튀니지의 민주화 혁명인 ‘재스민 혁명’의 불길로 이어졌고 결국 23년간 철권을 휘둘렀던 벤 알리 정권을 무너뜨렸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바람은 이후 이집트·리비아·시리아 등을 휩쓸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8일(현지시간) 시드부지드에 수천 명이 모여 부아지지의 죽음을 추모했다고 전했다. 도심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도 건립됐다. 최근 선출된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은 추모행사에 참석해 “튀니지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준 이 도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8일자에 부아지지처럼 민주화 혁명의 도화선이 된 주요 희생자들을 집중 조명했다.

 ◆이집트의 아메드 바시오니=예술가이자 대학교수였던 아메드 바시오니(Ahmed Bassiouny)는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이었다. 그는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저항을 계속한다면 이집트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며 “나는 이집트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시위에 나섰다가 1월 28일 정부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리비아의 무함마드 나보우스=정보기술(IT) 전문가인 무함마드 나보우스(Muhammad Nabbous)는 시민군의 인터넷 방송인 ‘리비아 알후라TV’를 설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방송은 정부군의 무자비한 학살행위를 국제사회에 알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시민군의 거점인 벵가지 인근에서 정부군 저격수에 의해 살해됐다. 그는 리비아 국민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불어넣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생전에 “내 조국의 상황이 좋아진다면 나도 나아지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시리아의 함자 알카딥=시리아에서는 13세 소년의 희생이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함자 알카딥(Hamza al-Khatib)이다. 그는 지난 4월 29일 부모와 함께 시리아 남부 데라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진압군과 시위대의 충돌로 인한 혼란 속에서 그의 부모는 알카딥의 손을 놓쳤다. 그가 시신이 돼 집으로 돌아온 것은 한 달 뒤였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시리아 정부는 부인했지만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의 모습은 즉시 유튜브에 올랐고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시리아의 민주화 세력은 “우리 모두가 알카딥 같은 순교자가 되자”며 지금도 격렬하게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시리아에선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세력과 정부군 간 충돌로 희생자가 늘고 있다. 현재까지 5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보도다. 이집트와 리비아에선 독재정권이 붕괴됐다. 하지만 총선이 실시 중인 이집트에서는 군부의 조속한 민정이양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리비아에서는 권력 공백에 따른 부족 간 충돌이 빈번하다. 튀니지에서도 높은 실업률과 경기 침체로 폭동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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