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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과세표준 구간 신설로 소득세율 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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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최근 정치권에서 증세 논란이 한창이다. 현 정권의 대표적 경제정책으로 손꼽혔던 감세 기조가 후퇴하는가 싶더니 여당과 야당이 앞다퉈 증세안을 내놓는 형국이다. 기업인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정부가 지난 9월, 내년으로 예정됐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취소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감세기조는 중단됐다.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 22%를 그대로 유지하되 과세표준 중간구간을 신설해 이들에 대해서만 법인세율 20%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줄곧 약속해 왔던 터라 기업들의 충격은 크다. 법인세 과세표준 중간구간 범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게다가 법인세율 인하를 완전히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이어 급기야 법인세율 인상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은 기업 경영여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당초 지난해부터 법인세율을 인하하기로 했다가 2년간 유예한 것인데 이번에 철회까지 되면 정부 정책의 대내외 신인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조세환경은 예측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일부에서는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감세’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재정건전성만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8월 전국 중소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93%는 ‘감세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현금만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는 지난해 우리나라 설비투자 증가율이 25%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물론 이는 환율·금리 등 정책적 조합이 어우러져 빚은 결과지만 정부의 감세정책이 없었다면 회복속도는 훨씬 더뎠을 것이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법인세율 인하가 곧 법인세수 감소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법인세수는 세원(기업의 이익)과 세율로 결정된다. 세율을 인하하면 기업 활력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이 촉진돼 세원이 커지고 결국 세수는 증가한다. 법인세율이 2000년 28%에서 2010년 22%로 인하되었지만 법인세수는 17.9조원에서 37.3조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소득세의 경우 최고세율 인하 철회에 그치지 않고 소득세율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도입 등 다양한 증세 방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증세 논란은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의 의욕을 감퇴시키고 소액투자자들의 불안감만 가중시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 35%는 OECD 평균 35.4%와 유사하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을 40%로 높일 경우 지방세·사회보험료까지 감안하면 실제 부담률은 50%에 근접할 텐데 면세자 비율이 40~50%인 상황에서 특정 계층에게만 소득세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과세표준 구간 조정의 폭이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 등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만큼 과세표준 구간을 신설해 소득세율을 내려주는 것이 맞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은 1996년 ‘8000만원 초과’였던 것이 2008년 ‘8800만원 초과’로 조정됐다. 12년간 달라진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조정 폭이 지나치게 작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그리 늘지 않았는데도 명목소득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된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의 고충을 해소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주식양도세 도입 논의도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성숙도와 경제력, 다른 소득과의 과세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주식양도세 도입은 장기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 성급하게 주식양도세를 도입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결정적 위축 요인으로 작용해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고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만이 그랬다. 충분한 검토 없이 갑작스럽게 주식양도세를 도입해 주가 폭락과 투자자 항의 등을 경험한 후 제도 시행 1년 만에 결국 철회했다.

 상황이 변화하면 정책도 변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장 재정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내년에도 기업들의 고군분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세정책의 급선회로 경제활력을 꺾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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