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덕과 정치 사이 고뇌한 첫 근대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묵직한 신간〈마키아벨리 평전〉에 관심가질 독자중 상당수가 몇해전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멋진 책〈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팬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만일 당신이 시오노의 권유에 따라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레체의 그 흥미진진한 인물을 '내 친구' 로 삼기로 했다면 금세기 중반이후 고전 반열에 오른 리돌피의 이책도 마저 읽길 권유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가 '그저 편한 친구' 와 또 다른 뉘앙스의 '외우(畏友)' 로 다가설 것이 분명하다.

또 미처〈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마음 단단히 먹고 도전해볼만한 책' 이라고 귀띔하려 한다.

뛰어난 전기문학, 즉 해당인물의 삶을 시대상황과의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재구성한 책을 만나는 일은 국내 출판계의 빈곤함에 비춰 숫제 행운에 속하니까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번역자가 임의로 선택해 펴낸 책이 아니다. 현대의 고전인 이책을 번역해달라고 학계에 공모하는 과정을 거쳤고, 적절한 번역자의 신청을 여과해 탄생시킨 대우총서의 한권이다. 번역이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본문 4백쪽 분량과 별도로 각주만 2백50쪽에 달하는 이 치밀한 책, 그러나 고증 못지 않게 거의 문학적 향취를 가진 이책은 '마키아벨리라고 하는 문제 덩어리' (역사학자 크로체의 고백)를 시오노 못지 않은 열렬한 애정으로 접근한다(저자는 마키아벨리와 동향인 피렌체 출신이다).

단 시오노 나나미가 '말랑말랑한 역사 에세이' 로 풀어갔다면 리돌피는 '엄격한 평전' 으로 재구성해 보인 점이 다르다. 단 시각은 닮은 꼴이다.

5백년전의 마키아벨리가 공화주의자였는지, 군주론자였는지도 명쾌하게 밝혀진바 없고, 무신론자였는지의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가 공화주의자였다고 본다. 그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15세기 도시국가 피렌체의 제2서기장 직책을 그토록 헌신적으로 수행했는가. 그리고 참주정을 한 메디치가문에 충성을 다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정치이념이 이탈리아 전체로 적용되야한다고 생각하는 교조주의자가 아니었고, 파당에 상관없는 국가의 충복이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러면 그는 기회주의자였을까? 애정이 담뿍 담긴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세상사를 극히 현실주의적인 눈으로 관찰하고 조소하면서도, 정치를 논할 때면 마음 속 깊은 곳의 이상주의와 즉흥적 열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던 사람, 그리고 친구들과는 지극히 세속적인 농담과 쾌락을 즐겼던 사람, 그러나 정치 파당에는 무관심했던 사람. 마키아벨리는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겠는가?"

저자는 그가 무신론자였다는 통념에도 제동을 건다. 여자와 쾌락을 즐겼던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그저 반(反)사제주의자였을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는 21세기 우리에게 마키아벨리는 '서양근대의 첫 테이프를 끊은 현실주의자' 로 다가온다.

저자가 그리려 했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리라. 즉 냉혹한 이미지를 풍기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 때문에 갖는 정치 이론가가 아니라 탁월한 산문을 썼던 문필가 이자 '도덕과 정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의 면모가 책에서 보이는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