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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K2] 히말라야 14좌완등 엄홍길 인생 下

중앙일보

입력

'죽음을 부른다' 는 K2(8천6백11m). 히말라야 어느 산 치고 어렵지 않은 곳이 없지만 나는 8천m 14좌 완등을 위해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산으로 K2를 선택했다.

올해 5월 칸첸중가(8천5백86m) 정상을 앞두고 비바크(야숙)한 뒤 다음날 정상을 밟고 내려와 귀국한 지 2개월여 만에 다시 K2 원정을 떠나려 하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고 걱정했다.

K2는 1986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가 국내 최초로 등정했고, 이후 14년 만에 경남-광주합동대가 두번째로 올랐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산이었다.

K2 원정계획은 지난해 '히말라야 8천m 14좌 완등 추진위원회' 에서 검토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칸첸중가 원정을 앞두고 있어 준비 일정이 너무 짧다는 의견이 많았다.

칸첸중가를 등정하고 귀국하자 히말라얀클럽을 주축으로 K2 원정이 추진됐다. 이미 원정 경비는 코오롱스포츠.파고다외국어학원에서 지원하기로 결정된 상황이었고 모자라는 부분은 삼성전자 등에서 후원받았다.

이번 원정 과정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셰르파 고용과 등반 일정을 짜는 일이었다.

네팔의 셰르파나 파키스탄의 하이 포터는 대부분 캠프Ⅲ나 캠프Ⅳ까지 장비를 나르는 일을 맡기 때문에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K2 외국원정대도 하이 포터 서너명을 고용해 캠프Ⅳ까지 등정 장비를 나르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일부에서 "외국원정대는 셰르파를 거의 고용하지 않는데 14좌를 완등하는 엄홍길씨가 셰르파를 고용해 정상에 오른 것은 아쉽다" 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이곳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안타깝다.

원정을 앞두고 한왕룡.나관주.박무택.모상현 대원을 선발했다. 이들은 올 봄에 8천m 고봉을 한차례 밟았기 때문에 고소에 적응된 상태였다.

한대원은 K2 원정을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어 나대원과 동행키로 했다. 박대원은 나와 함께 칸첸중가에서 비바크 후 등정할 정도로 호흡이 맞았고 모대원은 동료 산악인의 적극적인 추천을 따랐다.

결국 내 의견대로 알파인 스타일로 정상에 올랐지만 등정 스케줄을 짜는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등반을 하면서 '내가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머리를 짓눌렀다.

지난 10여년 동안 히말라야로 수많은 원정을 떠났지만 이번처럼 등정 후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오는 길이 멀게 느껴진 적이 없다.

히말라야를 경험한 산악인 상당수는 'K2 노멀 루트는 가장 쉬운 등반 코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등정대원들은 K2만큼은 노멀 루트가 바스크 루트보다 더욱 어려운 등정 코스라는 데 공감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올라간 노멀 루트보다 캠프 한개를 줄일 수 있는 바스크 루트가 노멀 루트로 바뀔지도 모른다.

이제 귀국하면 올 겨울 대한산악연맹이 추진하는 7대륙 최고봉 등정사업 가운데 하나인 남극의 빈슨매시프를 다녀올 예정이다.
그리고 8천m가 넘으면서도 주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로체샤르(8천4백m)와 얄룽캉(8천5백5m)을 모두 올라 명실상부한 8천m 완등 기록을 세우고 싶다.

아버님이 지난해 돌아가셔 14좌 완등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산만 다녔지 집안의 장남으로서 효도한 적이 없었고 마음고생만 시켜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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