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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STYLE] 패션 개그로 인기 급상승 … 개그콘서트서 “스톼일~” 외치는 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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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장도연·박나래·허안나(왼쪽부터). ‘패셔니스타 같은 모습을 연출해 달라’는 주문에 이들이 공통 소재로 삼은 것은 ‘체크 무늬’다. 장도연·박나래는 외투 겉에, 허안나는 트렌치 코트 안감에 체크 무늬가 보인다.

“미술학원까지 다니며 애썼지만 그림을 심각하게 못 그려 패션 디자이너 꿈을 포기”한 개그우먼 박나래(26).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비(非)실기로 입학해 패션이나 디자인에 별 관심도 없고, 비슷한 재킷만 수십 벌 사서 옷만 사면 엄마한테 욕 먹는 게 일”이라는 장도연(26).

 “레이스 달린 옷, 꽃무늬 원피스 입은 소녀처럼 보이고 싶지만 너무 숙녀처럼 생긴 외모 탓에 소녀풍 의상은 애초에 포기. 그러나 미련을 못 버리고 요즘도 종종 사서 결국 다른 사람에게 주고 만다”는 허안나(27).

 각자 패션과 스타일에 관한 슬픈 사연이 있는 이들이 모여 엉뚱한 패션 개그를 선보여 화제다. KBS2 TV ‘개그콘서트’의 ‘패션 넘버5’ 코너를 통해서다. 학교 체육복, 건강 검진복 같은 유니폼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바꿔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웃는 코너다. 이들을 만나 ‘요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코너에 처음 등장하는 건 폭탄을 맞은 듯 부풀린 머리 모양의 장도연이다. 셋 중에선 가장 무난한 차림으로 장도연이 나온 다음 기괴하다 싶은 검정 립스틱 화장을 한 허안나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뽐낸다. 하지만 늘 이들을 기죽이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실제 패션 디자이너를 지망했던 박나래다. 그는 시쳇말로 이 코너에서 ‘패션 종결자’쯤 되는 셈이다. 단정한 면접 패션이라면서 턱받이처럼 보이는 아동용 옷을 가슴에 붙이고 나와 ‘8등신이 아니라 2등신이 대세’라고 외치는가 하면 교복 편에선 교과서가 지루하다며 미술 교과서 안에 얼굴을 맞춰 넣고 확대한 이름표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이것이 주책 패션’이라고 우겼다. 만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모든 스타일에 대해 박나래는 이렇게 설명했다.

 “콧대 높은 패션 피플들아. 내가 패션의 신(神)이다. 너희들의 오만방자함을 버리고 내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겠지만 “이것이 곧 이 코너의 기획의도”라고 말하는 박나래의 설명이 이어졌다. “패션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너무 싫었다”는 게 그 이유다.

 “패션에 정답이 어딨어요. 사람들이 옷을 입으면서 자꾸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싫더라고요. 패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선 ‘베스트’니 ‘워스트’니 하면서 레드카펫 드레스 같은 걸 평가하는데 공감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가끔 비평하는 사람 얘길 듣다 욱해서 ‘저런 말도 안 되는…’이란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죠. 우리가 이 코너에서 얘기하는 건 그런 거예요. 정답이 없으니 자신 있게 무엇이든 스스로의 스타일을 가지라고요. 여기저기 넘쳐나는 트렌드니 뭐니 하는 정보라는 것, 가끔 무시해도 된다고 말예요.”

 옆에 있던 장도연이 박나래의 말을 거들었다.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들 영어를 많이 섞어 쓰는지. 유독 패션에 대해 얘기할 때 더 그런 것 같아요. 단어 뜻을 알고나 쓰는지 궁금해요. 우리 코너에서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시크하다’느니 ‘엣지 있다’느니 하는 말들을 쭈욱 이어붙일 때 청중들의 웃음이 터지잖아요. 다들 저희 생각에 공감하고 있단 뜻 아니겠어요?”

 허안나의 의견은 이랬다. “뭐 하나 유행이라고 하면 다들 사잖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유행 아닌 뭐라도 걸치고 다니면 사람들이 ‘누가 요즘 그런 걸 입어’라고 말하는 분위기. 이런 게 싫어요.” 허안나가 말끝에 “패션으로 계급사회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하자 박나래·장도연이 너무 진지하다 싶었는지 “드런 얘기”라며 농담을 했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 ‘멋있는 얘기’를 하면 받아치는 추임새 같은 거란다.

 이들에게 비꼬고 싶은 스타일은 또 뭐가 있는지 물었다. “장례식에 갈 때 입는 옷과 한복”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개그맨 사이에선 장례식에 갈 때 ‘멋내지 말 것’이란 불문율이 있어요. 그래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싶긴 한데 방송 불가일 것 같아서…(웃음). 요란하게 멋을 내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얌전하게 입는 것 자체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별로라 그래요.”

 반전을 노리는 코미디의 속성상 장례식장을 택한 듯했다. 그렇다면 한복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코미디에서 옷고름만 잘못 매도 항의 전화를 받아요. 우리도 한복이 우리 전통 옷이고 존중해 줘야 할 것이라곤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문제예요. 하나하나 따지고 드니까 한복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잖아요. 너무 예민하니까. 이렇게 격식을 강조하는 얘기만 듣다 보면 ‘한복=고귀한 옷’이란 압박감이 심해서 부담스러워져요.”

 20대 여성 연예인, “또래보다는 조금 더 버는 축에 속할 텐데 명품 가방 같은 것에 욕심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들은 짠 듯이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다. 설마하니 하나도 없으랴 싶어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오히려 묻는 기자를 당황케 할 정도로 당당하게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명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알고 굳이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한텐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까, 홍대 앞 같은 데서 독특하고 예쁘고 싼 것 사서 들어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관심이 없는 것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스톼일~’은 그랬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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