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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쇼 … 그걸 누구보다 잘 하는 에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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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뮤지컬 ‘에비타’의 정선아(오른쪽)와 이지훈.

정치는 쇼(show)인가. 재래시장을 돌며 상인의 손을 어루만지는 정치인을 보면서 사람들은 “쇼 한다”고 빈정거린다. 그런데 비록 ‘쇼’일지라도 위정자의 손을 잡는 순간 사람들은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쇼는 정치의 속물적 본성이자, 대중과 민낯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다.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 에바 페론은 노래한다. “인간이 원하는 정치, 그건 바로 환상, 치명적 환각, 영원한 쇼.” 삼류배우에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바에게 ‘쇼’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기다. 배우로서 관객을 매료시키고, 미모와 달변으로 남성을 홀리듯 혁명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실존 인물인 에바는 1952년 사망했지만 여전히 아르헨티나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에바의 애칭을 딴 뮤지컬 ‘에비타’도 에바의 인기처럼 76년 영국 초연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리바이벌되고 있다. 2011년 현재, 국내 재공연되는 ‘에비타’는 어떨까. 연출자 이지나는 “멀고 먼 남미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인물을 정서적 거리감 없이 그릴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독재·포퓰리즘·혁명 등을 겪은 한국 정치상황과 맞아 떨어졌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에바는 2006년 한국 첫 공연 때보다 ‘악녀’의 비중이 커졌다. 더 복합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전달자 역할만 했던 체 게바라가 전면에 등장해 에바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에바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빈민 구제에 힘써 대중들에겐 ‘성녀’로 추앙 받지만, 체 게바라는 에바가 죽었을 때 “1945년 시작된 긴 연극은 끝났어, 그런데 어쩌지 그 분이 남긴 빚더미만 수억, 수천 달러”라며 ‘악녀’로 규정한다. 포퓰리즘의 이중성을 건드리며 어느 정치사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인물로 그려낸 것이다.

 에바 역의 정선아는 반짝반짝 빛난다.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고, 손짓 하나에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연기를 한다. 남자배우들의 존재감이 약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대장치는 회전무대와 계단만으로 단조롭게 구성했다. 하지만 빈 공간은 화려한 조명으로 메워 심심하지 않다.

 ▶뮤지컬 ‘에비타’=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3만~13만원. 1577-3363.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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