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교 내신 개편 부작용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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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고교의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내신) 제도가 8년 만에 바뀐다. 올해 중1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4학년도엔 과목별로 석차가 없는 ‘A·B·C·D·E·F’ 성적표를 받게 된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은 학교에서는 한 학급 학생 전부가 A를 받을 수도 있다. 모든 학생을 줄 세운 뒤 정해진 비율대로 성적을 매기는 상대평가 방식에서 해당 학년에서 배워야 할 성취 수준에 따라 성적을 받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현행 제도의 폐해는 학생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할 적으로 여기게 해 교실을 삭막한 전쟁터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내신 제도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개편안에 대해 타당하다고 본다. 선진국 어디를 가봐도 모든 학생을 9등급으로 나누는 내신 제도는 없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모든 게 용인될 수 없다는 건 수시로 바뀌어온 교육 제도가 증명하고 있다. 2006학년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제로 바뀔 때 역시 명분은 고교 교육 정상화였다. 그간 내신의 불리함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되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고 등이 이번 변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 광풍을 일으켰던 특목고 입시가 최근 잦아진 상황에서 이번 개편이 고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을 다시 불러온다면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 또 대학들이 쉬운 수능에다 변별력 잃은 고교 내신을 이유로 어려운 논술시험을 시행한다면 공교육이 망가지는 등 제도 개편의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

 결국 내신 경쟁으로 피폐해진 교실을 살리면서도 자칫 과열될지 모르는 입시 문제를 푸는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당국과 대학·고교는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일반고가 특목고에 밀리지 않는 학교로 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 역시 점수 위주의 선발이 아닌 학생의 잠재력을 토대로 선발하고, 다양한 고교의 특성을 고려해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