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밤을 새는 당신’에게 드리는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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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상처 받은 당신, 밤을 새지 말라!” 잠이 보약이라지만 힘든 기억을 떨치는 데도 숙면만 한 게 없다. 미국의 한 대학연구팀이 꿈을 꾸는 동안 스트레스 관련 화학물질의 분비가 줄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완화해 준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일상에서 ‘밤을 새지 말라’는 말을 흔히 한다. “학습효과를 높이려면 밤을 새지 말라” “피부미인이 되려면 밤을 새지 말라”와 같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모두 ‘밤을 새우지 말라’로 바루어야 한다.

 ‘새다’는 날이 밝아 오다, ‘새우다’는 한숨도 안 자고 밤을 지내다는 뜻으로 두 단어의 용법이 다르다. ‘새우다’는 타동사로 ‘밤을’이란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만 ‘새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이므로 ‘밤을 새지 말라’로 쓸 수 없다.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꼬박 밤을 새우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9%의 만취 상태와 비슷하게 운동감각이 떨어진다”처럼 사용한다.

 ‘밤(이) 새다’ ‘밤(을) 새우다’ 꼴이 변형돼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밤새다’ ‘밤새우다’도 마찬가지다. “일한다고 허구한 날 밤새니 몸이 축날 수밖에!” “계약 전, 뜬눈으로 밤샜다”와 같이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밤새니’ ‘밤샜다’는 ‘밤새우니’ ‘밤새웠다’로 고쳐야 바르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하얗게 지샌 밤을 당신은 잊었나요” “긴 밤 지새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이란 노랫말은 없다. ‘지새운 밤을’ ‘긴 밤 지새우고’라고 부른다. ‘지새우다’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취하나 ‘지새다’는 자동사여서 목적어를 취하지 않으므로 ‘밤을 지새다’로 사용하는 건 옳지 않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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