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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

언론중재, 언론사·국민 모두의 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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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학철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정부기관이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 하는 것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기관의 중재신청에도 타당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위원회가 “대통령·정부·공무원을 위한 세계 유일의 기구”라며 “법원보다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고 손쉽게 정정보도를 청구해 고의·과실·위법성의 증명 없이도 언론을 압박하고 위축시킬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는 주장도 있다.

 작년 한 해 위원회가 처리한 조정사건은 모두 2205건. 이 중에서 정부기관의 청구는 불과 66건으로 3%가 채 되지 않으며, 이 중 실제로 정정보도가 나간 것은 9건으로 청구 건수의 13.6%에 불과하다. 반면에 일반 국민이 청구한 사건은 1284건으로, 거의 60%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중재제도가 마치 정부기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의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언론중재제도에 비판적인 시각의 배경에는 몇 가지 오해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법원이 아닌 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하면 손쉽게 정정보도를 얻어낼 수 있다는 오해도 그중 하나다. 법원에 제소하면 고의·과실·위법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위원회에 신청하면 이런 것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특히 정부기관의 신청이 손쉽게 받아들여진다고 보는 견해다. 이는 중재제도에 대한 무지이거나 주관적인 왜곡이다. 언론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의 경우에는, 피해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법원에서든 위원회에서든 언론사의 고의·과실·위법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법률상 다름이 없다.

 언론중재제도는 언론자유의 신장과 확대, 그리고 국민의 피해구제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도다. 피해의 구제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중재 절차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대원칙으로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중재 과정에서 언론사가 ‘합의할 수 없다’거나 ‘중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피해자인 신청인은 아무런 주장도 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양식 있는 언론인들은 중재 과정에서 그런 식의 무성의한 태도로 임하지 않는다. 중재제도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중재에 응하여 신청인의 요구 중 타당한 것들은 수용한다. 중재 과정에서 어느 것을 수용하고 어느 것을 배척할 것인가는 언론사가 전적으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위축 효과’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주도권을 양쪽 당사자가, 엄밀히 말해 신청인보다는 언론사가 좀 더 주도권을 가지는 위원회 중재절차에서조차 언론 쪽이 위축된다고 한다면 보다 엄격한 법원 재판은 대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가 그 어떤 전체주의보다 앞선 우월한 체제임을 증명하는 고귀한 가치이자 이념이다. 이와 똑같이, 국민의 인권과 명예도 자유민주주의가 지켜내야 할 고귀한 가치이자 이념이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학철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