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손으로 하나하나 깎은 듯한 등장인물 … 이거 황당무계한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지음, 문학동네
291쪽, 1만2000원

본디 문학이란 손의 일이다. 펜을 굴리든 자판을 두드리든 손을 노동하여 짓는 게 문학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표제는 쓰나마나 한 것일 수 있다.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니? 손으로 만든 소설?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작가는 어림 없다. ‘작가의 말’에다 또박또박 적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아마도 작가는 ‘핸드메이드’를 인공(人工)이란 뜻에서 썼을 테다. 스토리(story) 대신 픽션(fiction)이란 말을 나란히 둔 것도 ‘가공된 이야기’란 점을 강조하려는 것일 게다. 작가가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 발표한 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은, 다채로운 주제와 인물을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 만들어낸 듯 정밀하다.

 그 정밀함의 밑바탕은 상상력이다. 리얼리즘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포함돼 있지만, 이 소설집이 반짝이는 순간은 황당무계한 작가의 상상력이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될 때다. 이를테면 소설집 맨 꽁지에 실린 ‘열한시 방향으로 곧게 뻗은 구 미터가량의 파란 점선’이란 작품을 들춰보자.

 이 소설에는 금도끼은도끼 설화를 실증하려는 T교수 연구팀이 나온다. “실제로 산신령을 만난 나무꾼이 1980년 12월 삼청교육대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의암호 인근에 살았었다”(219쪽)는 소문을 토대로 이 설화에 대한 과학적 증명에 나선다. T교수팀은 의암호 인근 연못에서 실제 산신령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설화에서처럼 금도끼·은도끼까지 손에 넣는다. 하지만 T교수의 욕심이 과해지고, 산신령을 거듭 불러내면서 온화한 산신령은 거대한 살인마로 돌변한다.

 묘한 일은 이처럼 황망한 이야기를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된다는 것이다. 냉동실에 갇힌 멸치들의 탈출기(‘자정의 픽션’)나 길고양이의 인격화를 통해 외로움의 정서를 성찰하는 이야기(‘갈라파고스’) 등 인공적인 이야기에 깃든 인간적인 성찰에 마음이 스며든다.

 소설집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철학·신화·SF·유머 등이 뒤섞여 있다. 이토록 복잡한 이야기를 짓기 위해 작가의 손은 다급했으리라. “내 손으로 썼다”고 자랑하듯 떠벌려도 좋을 작품집이다.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