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뚫는 운동권의식과 벤처정신은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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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블 코리아’란 회사 이름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생명력 있는(viable) 한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일본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도전의식 때문이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벤처 정신도 담았다고 이사장은 귀띔했다.

설립 3년만에 임직원 2백50여명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장 권한대행을 거친 운동권 출신 사업가가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7월 12일 코스닥위원회의 등록심사를 통과, 9월 중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예정인 배터리(축전지) 제조업체 바이어블 코리아의 이철상(34)사장은 “기쁘면서도 좀 혼란스럽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현재 이사장이 가진 회사 주식은 2백30만주(지분율 34.7%)로 신문에 보도된 주당(株當) 발행희망가 2만4천원(액면가 5백원)으로만 계산해도 5백억원대의 자산가가 되는 셈이다.

이사장의 첫 직장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서 한 달 활동비로 받은 돈이 20만원에 불과했음을 생각하면 그의 ‘혼란스러움’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87학번인 이사장은 세간의 ‘386론(論)’에 대해 너무나 다양한 386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틀로 묶어 정의를 내린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 386론에는 대학 졸업자들만의 특권의식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있다는 지적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60년대에 태어난 30대 가운데 대학을 가지 못한 이들을 386론에서는 은근슬쩍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졸업 후 전국연합에서 정책부장·부대변인 등을 거쳤다. 1997년 결혼 후 생활고 때문에 재야단체에서의 활동을 접은 이사장은 말레이시아로 시장조사를 갔다가 우연히 리튬 폴리머 전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것이다’하고 무릎을 쳤다.

세계 2차전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이 90년 처음으로 상용화한 리튬 이온 전지에 비해 안전한데다 가볍고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어 차세대 정보통신기기의 핵심 전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귀국하자마자 직원 한 명만 달랑 채용하고 시작한 사업이 3년새 연구인력 11명을 포함, 2백50여명의 임직원을 먹여 살리는 매출액 96억원의 탄탄한 업체로 커졌다.

이사장은 “98년 상반기에 돈이 없어 직원들 월급을 두 달 동안 주지 못했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두 형이 보증을 서고 아버지가 집을 담보로 내줘 가까스로 자금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98년부터 시작된 서울대 공업화학과 오승모 교수팀과의 산학 협동연구 개발을 통해 리튬 폴리머 전지의 핵심기술인 양산(量産)기술을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사장은 “삼성전자로부터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애니콜 휴대폰 모델에 장착되는 등 국내에선 최초로 리튬 폴리머 전지를 팔아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사장은 “평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잔꾀 안부리고 꾸준히 원칙을 지키면 회사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장의 원칙은 회사돈과 개인돈을 구분하고 항상 근검절약하며 현금 흐름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원칙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고.

''바이어블 코리아’란 회사 이름에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생명력 있는(viable) 한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일본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도전의식 때문이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벤처 정신도 담았다고 이사장은 귀띔했다.

이 회사의 사훈(社訓)은 ‘최고의 기술 창조, 의리있는 공동체’. 속뜻은 유통·서비스업이 아닌 기술력 있는 제조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과 한번 입사한 직원은 해고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닷컴사업과 구조조정이 유행어가 돼버린 요즘 시대에 역행한다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조업만이 실제적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고용 안정이 팀웍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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