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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할 줄 알았더니 판타지 … 노희경의 경쾌한 일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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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3년 만에 들고 나온 ‘빠담빠담’은 강칠(정우성·왼쪽)과 지나(한지민)가 서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화려한 영상에 판타지가 섞여 노희경의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있다.

김수현 작가는 ‘천일의 약속’에서 ‘천일’로 상정되는 시간과 ‘약속’으로 대변되는 기억의 문제를 가져왔다. 시간을 기억의 차원으로 가두자 삶이 달리 보인다. 영원히 지속될 듯 알았던 삶이 점차 지워져가는 기억 속에서 다른 의미를 전한다. 아등바등 살아가던 관계를 관조하고, 한 인간으로서 타인을 바라보게 된다.

 반면 ‘빠담빠담 …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하 빠담빠담)’는 노희경 작가가 시간이라는 잣대를 갖고 바라보는 삶이다. ‘천일의 약속’이 삶을 바라보기 위해 시간을 한정 지었다면, ‘빠담빠담’은 거꾸로 시간을 무한히 선택적으로 확장시킨다.

 예컨대 ‘빠담빠담’ 첫 장면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양강칠(정우성)이 먼저 보여지고, 이야기는 한 달 전으로 되돌려진다. 한 달 전, 출감을 앞두고 외출을 허락 받은 양강칠은 이국수(김범)와 함께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계속 정지나(한지민)와 우연한 부딪침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 교도소로 복귀해 생활하던 중 사고로 김교위(윤주상)를 죽이게 되고 그래서 교수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죽는 바로 그 순간, 시간이 되돌려진다.

노희경

 즉 ‘빠담빠담’은 이 시간이 원상태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어떤 다른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강칠은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억제함으로써 김교위를 죽이지 않게 되고 결국 무사히 출감하게 된다. 출감하는 날 이국수는 양강칠에게 이렇게 말한다. “첫 번째 기적에서 배운 걸 잊지마. 형의 의지가 형을 살린 거야. 인간답게 멋지게 살고 싶은 형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김교위님을 치려는 주먹을 멈추게 한 거라구.”

 사실 이 드라마의 시간이 되돌려지는 상황에 대한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즉 이것은 하나의 판타지일 수도 있고 , 이국수라는 인물이 본래 몇 번의 기회를 더 주는 수호천사라는 설정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 모든 일들이 애초에 양강칠에게 있었던 교통사고에서 여전히 깨지 못한 채 꾸고 있는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치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 건 이런 장치를 통해 노희경 작가가 바라보려는 삶의 모습이다.

 양강칠이 이국수에게 묻는다. “넌 세상이 아름답고 공평하고, 살만한 거라고 생각하냐?”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아니. 세상은 엿 같고 불공평하고 절대 살만하지 않아.”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살 기회를 얻은 양강칠은 선언하듯 소리친다. “좋다구. 한번 붙어 보자구. 죽거나 까무라치거나 세상과 한판 뜨겁게 맞짱!”

 ‘빠담빠담’은 기존 노희경 드라마가 가진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지만, 그 전개방식에 있어서는 대단히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의 축을 판타지를 통해 되돌림으로써 우리네 삶이 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과정이라는 통찰을 끄집어내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진중한 주제의식을 판타지로 녹여냄으로써 작품이 지루하지 않고 팽팽하다는 점이다. 낡고 익숙한 드라마의 관성을 깨는 즐거움이 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도 일관되게 등장하는 소소한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발랄함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확고한 자기 연기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정우성과 노희경의 독특한 조합 역시 대단히 성공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색다르게 만드는 건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이제는 삶을 통찰하면서 동시에 실험적일 수도 있는 판타지 장치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노희경 작품들이 가진 지나친 진중함으로 인해 무거워졌던 드라마들과 ‘빠담빠담’은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진지하지만.

정덕현(드라마평론가)

◆노희경=1966년 경남 함양 출생. 1995년 MBC 베스트극장 ‘세리와 수지’로 데뷔.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 ‘내가 사는 이유’(1997), ‘거짓말’(1998),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화려한 시절’(2001), ‘꽃보다 아름다워’(2004), ‘굿바이 솔로’(2006),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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