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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담배 피우다 사망, 담배회사 책임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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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30년 이상 담배를 태운 사람이 폐암으로 숨지자 유족들이 국가와 KT&G(옛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또 패소했다. 담배에 제조상 결함이 없고 제조사가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 배상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한규현 부장판사)는 6일 폐암으로 사망한 박모씨의 유족이 “흡연 때문에 폐암이 발생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담배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제조사가 거짓정보를 흡연자들에게 전하거나 유해성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KT&G가 관련 법규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낸 임모(62)씨는 경찰공무원이었던 남편 박씨가 2000년 폐암으로 사망하자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망원인이 업무와 관련이 없는 폐암이기 때문에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임씨는 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도 같은 이유로 패소했다. 그러자 임씨는 2005년 국가와 KT&G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6년 만에 이날 1심 판결을 받은 것이다. 선고 직후 임씨는 “남편이 30년 이상 담배를 피워서 폐암에 걸렸다고 여러 병원이 진단했는데, 담배 제조사에는 책임이 전혀 없다니 말이 되느냐”며 울먹였다.

 이날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법부의 입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원고 측 정 변호사는 “재판부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는 인정하되 오랜 흡연으로 인한 폐암은 흡연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KT&G의 소송대리인 박규선 변호사는 “사법부가 아예 판단을 하지 않았으니 박씨 사망과 흡연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올 2월 서울고법은 폐암 환자와 가족들이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폐암과 흡연의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제조사의 불법행위는 없었으니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봤다.

 의료계에선 오랜 기간 흡연하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은 “해마다 흡연으로 폐암·심혈관질환 등에 걸려 5만 명이 사망한다”며 “담배제조사가 온갖 첨가물을 넣어 중독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세계는 다 아는데 우리 사법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수련·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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