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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일본야구 잠망경5. 일본 관중

중앙일보

입력

1996년 시즌말 야쿠르트의 홈인 진구 구장에서 희한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꼴찌가 거의 확정적이던 야쿠르트는 무성의한 경기를 펼치며 도쿄를 근거지로 같이하는 라이벌 요미우리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이에 격분한 야쿠르트팬들은 경기는 관람하되 경기장에서 일체의 응원행동을 하지않는 이른바 침묵응원을 벌인다. 그 결과 이날 요미우리와의 야쿠르트 홈경기는 그야말로 적막하고 썰렁하게 진행되었다.

침묵응원이 벌어진 후 이에 놀란 야쿠르트 구단은 긴급히 홈팬들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그 다음경기부턴 악착같은 근성으로 싸워 요미우리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침묵응원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는 지극히 일본적인 분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나 미국같으면 열나는대로 야유를 보내거나 아예 경기장을 찾지 않으면 않았지 이런 식의 침묵응원은 생각조차 안한다. 굳이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들지않아도 NHK의 야구중계에서 보이는 일본인들의 응원은 그들의 야구만큼이나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다.

일본에서도 가장 극성맞다(?)는 한신의 고시엔 구장을 예로 들어보자.

경기 시작 몇시간 전부터 스탠드를 가득메운 오사카 한신팬들의 응원은 이미 한창이다. 극성팬들은 축구의 서포터스처럼 한신의 유니폼을 단체로 입고와 한신응원가를 부르며 경기장 분위기를 띄운다. 거기다 타이거스를 상징하는 호랑이무늬 풍선막대와 나팔소리까지 겹쳐 고시엔 구장은 장내방송이 들리지않을 정도로 요란하다.

경기가 시작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고등학교 단체응원단처럼 일사불란한 응원이 펼쳐진다. 한신 타자가 나올때마다 그 선수에 대한 격려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이름을 연호하고 한신의 호타,호수비가 나올때마다 엄청난 박수소리,나팔소리가 고시엔에 터진다.

한신의 7회초 수비가 끝난후 고시엔의 집단응원은 절정에 달한다.한신이 경기후반에서 선전하기를 기원하며 5만관중이 함께 한신의 응원가를 합창한 후 일제히 날린 풍선으로 고시엔 하늘은 뒤덮인다.(이 이벤트는 꼭 7회에만 한다.경기흐름에 관계없이 모두가 7회까지 기다린다.)경기가 혹시라도 한신의 승리로 끝나면 오사카팬들은 다시 한번 단결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경기가 끝나도 바로 집에 가지않고 몇번이고 한신응원가를 계속 불러대며 홈팀의 승리에 도취하며 기뻐한다.

이와같은 집단적으로 열광적이고 조직적인 응원방식은 오사카 고시엔이 농도가 좀더 진할뿐이지 다른 구장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야구를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 경건하게 받아들인다는 평을 듣는다. 실제로 일본야구팬들은 홈팀이 경기에 지고있거나 이미 승부가 기울었어도 자리를 뜨지않고 끝까지 자기팀을 응원해준다. 개개인마다 멋대로 떠들고 잡담하며 관람하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버리는 미국이나,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앞서나가서 흥이 나야만 터지는 신바람응원의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과 미국이 야구를 재미로 보고 그 재미를 돋구는 요소로서 응원을 하는 반면,일본인들은 야구에서 재미보다 승부에 더 가치를 둔다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야구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는 열망이 담겨있는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응원을 경기내내 보내는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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