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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이란 핵, 결국 파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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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전 세계가 유로존 위기 해결에 여념이 없다. 그 틈을 타 이란 땅에서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핵무기 때문이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적어도 기술적으론 개발 완료 단계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몇 년간 이란 정부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매진해 왔다. 이란 정부가 그동안 자신들의 주장대로 핵무기 제작 기술만을 보유하고, 이를 원자력 발전 등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이란을 회원국으로 남겨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민간 핵 원자로가 한 대밖에 없는 나라에서 평화적 핵 이용을 하기에는 천문학적 비용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이란은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어내기 쉬운 중수로를 개발하고 있다. 

 이란은 그동안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A Q 칸이 개발한 우라늄 농축 기술과 핵무기 디자인을 수백만 달러를 들여 구매해 왔다. 명백한 NPT 협정 위반이다. 게다가 이란은 최근 몇 년간 이런 거래 사실 자체를 숨겨 왔다. 리비아 민주화로 인해 알려진 사실이다.

 이란이 핵무장을 선언한다면 중동지역의 전략적 균형에도 급격한 변화가 올 것이다. 핵 군비 경쟁은 물론이고, NPT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란이 핵을 볼모 삼아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에는 핵미사일의 악몽이 될 것이고, 터키 등 이웃 국가들에도 ‘2차 타격’의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사우디 등 걸프 국가들이나 EU 국가들도 핵무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년이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9개월 내 이란은 핵 보유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고, 이는 내년 11월 미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란이 핵 보유국이 되는데 이스라엘이 두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스라엘 역시 핵 개발 맞대응을 할 것이다. 군사적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공중 폭격이 싸게 먹힌다. 이란의 핵 개발이 미사일 몇 방으로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국제 사회가 군사적 공격에 대해 규탄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사 개입은 외교적으로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없앤다는 문제점도 있다. 

 꾸물거리다가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란의 반정부 시민군이 서방 군사작전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애써 이룩한 ‘아랍의 봄’이 이란을 중심으로 한 반(反)서방 연대의 물결로 인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아랍은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질 것이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핵무기에 기대서 내부 갈등을 무마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 수단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핵무기 이슈에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정파는 권력에서 밀려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의 지도자들은 국제 사회의 제재에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역사적으로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판단 미스로 인해 대규모 재앙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2012년에도 이란 핵무기 보유 용인 문제를 둘러싸고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외교적 수단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비참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유럽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유럽 정상들의 마음에는 서로 다른 꿍꿍이가 있다. 이란 정부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정리=이현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