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입시학원 없는 시골서 수능 만점‘공교육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올 수능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은 백주홍군(가운데)이 아버지 백상순씨(왼쪽), 어머니 정미순씨와 전남 곡성읍의 한 식당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평소 꾸준히 책을 읽고 수업에 충실했어요. 비결은 없는데….”

 올해 수능에서 언어·수리 나·외국어와 사회탐구(윤리·국사·한국근현대사) 등 4개 영역에서 만점을 받은 전남 곡성고 백주홍(18)군은 30일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수능에서 문과학생 중 언·수·외와 사탐 3개 과목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은 수험생은 27명. 백군은 “가채점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하나 틀린 줄 알았는데 만점이 나왔다”며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뭔가 알아간다’는 자신감을 가진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백군의 수능 만점은 공교육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곡성군 삼기면에서 태어나 삼기초등학교와 곡성중을 다닌 ‘곡성 토박이’다.

곡성고는 섬진강과 지리산을 낀 농촌학교로 전교생이 450명, 그 중 3학년은 문·이과 합쳐 147명이다. 전교생 중 절반은 희망과 성적에 따라 기숙사 생활을 하는 농어촌 기숙형학교다. 백군은 “인구가 3만1400여 명인 곡성군에는 입시 전문학원이 한 곳도 없어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백군은 수업에 충실하며 선생님을 붙잡고 물어 어려움을 극복했다. 매일 수업한 내용을 원리와 개념 이해 중심으로 반복 또 반복해 익혔다. 고교 3년 간 주말을 제외하곤 학교 기숙사에서만 생활하며 공부에 매달렸다. 매일 오후 10시 자율학습이 끝나도 새벽 1시에 기숙사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책을 붙잡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곡성고의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도 효과가 컸다. 학생 수가 적어 과목별로 수준별 수업을 해 학생들 실력을 끌어올렸다. 백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전북 남원의 학원을 다녀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4일을 못 넘기고 그만 뒀다”며 “학교 수업 외에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매주 2~3일씩 영어 심화반 수업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백군이 ‘공부의 신’이 된 데는 책을 많이 읽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보스니아 내전 현장을 다룬 『네 이웃을 사랑하라(A STORY OF WAR)』 등 60여 권의 책을 고교 3년 간 읽었다. 백군은 “이 책을 읽고 외교 전문가를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논술학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논리적인 사고력을 기르려면 다양한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어요.”

 유난히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부모님 덕도 컸다. 농협 직원인 아버지 백상순(51)씨와 어머니 정미순(45)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책과 친해지도록 수시로 책꾸러미를 내놓았다. 백군은 수시전형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한 상태로 10일 서울대 사회과학대 수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훌륭한 외교관이 되거나 세계 분쟁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곡성=최경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