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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기부 뒤 노후 걱정될 땐 CGA … 돈 어디 쓸지 정하고 싶으면 DAF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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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이타적 행동조차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가설이다. 1976년 발간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기부’와 같은 이타적 행동의 근간에도 이기적 동기가 있다. 고전적으로는 ‘인정(認定)’과 ‘만족감’을 예로 든다. 기부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정서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이기적 동기만으로는 기부문화 활성화가 어렵다. 좀 더 강한 동기가 필요하다. 사회가 무조건적인 기부를 바라서는 안 된다. 기부자도 자기 자산의 종류와 관리 계획에 따라 어떤 기부 방법이 효율적인지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 기왕이면 세제 혜택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다양한 기부 방법을 알아봤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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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기부테크’는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 재단 설립

 보통 ‘알 만한’ 부자들이 하는 기부 방법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 부부가 1994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367억 달러(약 42조7000억원)에 이른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6년 당시 재산의 99%인 440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그중 85%인 370억 달러를 자기 아들이 세운 재단이 아니라 게이츠 재단에 줬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안철수연구소 지분(37.1%)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도 재단 설립을 통해서일 것으로 본다.

 이런 재단은 모두 공익재단(Public Foundation)이다. 재단 설립 후 기부금을 더 받을 수 있으며, 보통은 재단 유지와 운영을 위해 사무실을 마련하고 직원을 고용하며, 직접 자선사업을 진행한다. 자산 규모가 큰 경우다.

 더 대중적인 것은 민간재단(Private Foundation)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세운 뒤 더 이상의 기부금을 받지 않는다. 운영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무실은 따로 두지 않고, 자선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비운영 민간재단). 재단 이사회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서 이듬해 어느 단체에 얼마를 줄지를 결정한다. 2007년 기준으로 미국에만 7만7000여 개의 비운영 민간재단이 있다. 총자산이 약 5200억 달러다.

 재단 설립의 가장 큰 장점은 기부자가 죽어도 재단은 영속한다는 점이다. 설립자의 이름이 기억되고, 이사회 등을 통해 설립자의 자손도 지속해서 자선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재단 설립 절차가 까다롭다. 탈세 등의 목적으로 재단을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전현경 부서장은 “‘좋은 일 하려 했더니 빈정상해서 못하겠다’며 재단 설립을 포기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에서는 1년여 전부터 기부 컨설팅 서비스를 도입해 자산가들의 기부를 도와주고 있다. 지난해 이 증권사 서비스를 통해 장학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 유산 기부

 생전에 유언장을 만들어 죽은 다음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방법이다. 죽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자기 재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가장 쉬워 보이는 기부 방법 같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직 국내에는 유언장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언장을 쓰려면 주의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자필증서 유언은 유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전문,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스스로 쓰고 날인해야(도장을 찍어야) 한다. 남이 대신 써 주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후 프린터로 출력한 것 등은 모두 무효다. 특히 날인(捺印), 즉 인장 또는 도장을 찍어야 한다.

 실제로 날인을 하지 않아 유언장이 무효가 된 사례가 있었다. 한 사회사업가가 연세대에 123억원을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그런데 유서에는 날인이 빠져 있었다. 유족은 “유언장에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며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유산 기부는 가족들 간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앞선 사례처럼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언장의 법적 효력을 확실히 하려면 공증을 받는 것이 좋다.

 ‘유류분 제도’ 또한 유산 기부의 걸림돌이다. 민법에 의해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상속재산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가족들이 반대하면, 일정 수준 이상을 기부할 수 없게 된다.

세금 혜택 확실히 받고 … 자선잔여신탁

 가장 적극적으로 세제 혜택을 챙길 수 있는 기부 방법이다. 그러나 신탁법의 차이로 아직 국내에는 없는 제도다. 정부에서 제도 도입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해외 사례들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아직 답보 상태다.

 자선잔여신탁(CRT)은 기부자가 돈이나 기타 자산(부동산·증권·미술품 등)을 미래에 공익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설립하는 신탁을 말한다. 실제 기부가 일어나기 전까지 신탁자산의 운용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기부자 본인이나 본인이 지정한 사람(혹은 사람들)에게 지급할 수 있다. 신탁 기간은 기부자나 특정인(예를 들어 증손자)의 생존 기간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최대 20년이다. 신탁 기간이 끝나고 남은 것(Remainder)은 지정된 공익단체에 기부된다.

 기부하기로 약속한 내용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신탁을 설정하는 시점에서 해당 자산에 대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CRT 기간 동안 수혜자가 매년 받는 소득에 대해선 세금이 부과된다.

노후 보장까지 한 번에 … 기부연금

 기부자가 현금과 부동산 등 자산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연금으로 되돌려주는 제도다. 연금 수령액은 전체 기부액의 30~50%다. 자산을 기부할 때 일정 연령 이후 매달 얼마씩 돌려받을지 계약을 한다. 연금은 자산을 기부한 단체에서 준다. 예를 들어, 1억원을 기부하고 65세 이후 50만원씩 연금을 받는다고 치자. 전체 연금 수령액이 기부금의 30%라면, 69세까지 60개월 동안 받을 수 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미국 기부연금의 전체 자산 규모는 150억 달러다.

 기부연금은 자산을 기부하고 싶어도 노후 대비 문제로 주저하는 이들의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국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일명 ‘김장훈법’이다. 가수 김장훈은 12년간 110억원을 기부했지만 현재 서울 마포구의 122㎡(31평)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기부하느라 노후 준비를 못 한 이들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 주겠다는 취지다.

돈이 2% 부족할 때 … 기부자조언기금

 재단을 설립하면 좋지만 기부 자산이 부족할 때는 여의치 않다. 이럴 때는 기부자조언기금(Donor Advised Fund)을 활용하면 된다. 기부자가 공익단체에 기부금을 주면, 그 단체가 별도의 기금(펀드)으로 기부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기부자가 기금의 사용처나 기금의 운용 전략에 대해 조언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기부자별로 기부금이 따로 관리되지 않는다. 다른 기부금과 합쳐져 하나의 기금으로 관리된다. 기부를 할 때 ‘어떤 곳에 써 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기부를 받은 단체가 그 약속을 꼭 지킬 필요는 없다. 2003년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부한 ㈜태양 송금조 회장 부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송 회장은 “양산캠퍼스 부지 조성에 써 달라고 기부를 했는데, 학교 측이 당초 약속과는 다른 곳에 기부금을 썼다”고 주장하며 “나머지 110억원은 못 내겠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6월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DAF 제도가 있었다면 이런 분쟁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자선잔여신탁 Charitable Remainder Trusts

● 의미:기부자가 자산을 미래에 공익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그 전까지 자산의 운용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기부자 본인 등이 지급받음

● 특이사항:기부 약속은 철회 불가능. 현재 시점에서 해당 자산에 대해서는 기부한 것과 같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사례:국내엔 아직 관련 법규 미비. 해외에선 기부라는 공익적 목적과 세제 혜택이라는 사익의 결합을 통해 기부문화 활성화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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