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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도요타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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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경민
뉴욕특파원

지난해 3월 8일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2008년형 도요타 프리우스가 시속 150㎞ 속도로 로스앤젤레스(LA) 8번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이 TV에 생중계됐다. 차를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운전자의 당황한 표정, 그를 따라가며 확성기로 차 세우는 방법을 일러주는 경찰의 다급한 모습. 20여 분 동안 이어진 추격전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2009년 8월 도요타 렉서스를 몰고 가던 경찰 일가족 사망 사고가 알려지며 궁지에 몰렸던 도요타엔 치명타였다.

 여론은 들끓었다. 도요타 차의 복잡한 전자제어장치에서 나온 전자파가 급가속의 주범이란 괴담이 삽시간에 퍼졌다. 신고·고발도 쇄도했다. 미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물론 증권거래위원회(SEC)까지 칼을 빼 들었다. 정치인도 덩달아 칼춤을 췄다. 창업주의 손자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미 의회에 불려 나와 곤욕을 치렀다. 14년 만에 오너경영 체제를 부활한 그로선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여기다 도요타는 지난해에만 미국 정부에 4880만 달러(약 563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딴판이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리우스 ‘활극’은 빚에 몰린 운전자의 자작극으로 굳어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나서 전자파를 해부해 봤지만 급가속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급가속 신고의 상당수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은 운전자 실수로 드러났다. 물론 운전석 매트나 브레이크 페달 결함은 도요타도 인정한 잘못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마녀사냥’에 가까웠던 도요타 때리기를 설명하긴 어쩐지 허술해 보인다.

 어쩌면 그건 도요타가 너무 잘 나갔기 때문 아닐까.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빅3’ 자동차는 몰락했다.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제네럴모터스(GM)가 파산 위기에 몰렸으니 말 다했다. 그 와중에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리에 무혈입성(無血入城)했다. 벼락 출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도요타에 미국 정부와 업계의 배알이 뒤틀린 건 당연했다. 도요타 딜러의 배짱 장사에 소비자의 마음도 돌아섰다.

 도요타 추락으로 마녀사냥은 끝난 것일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특히 한국 기업은 조심해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5월 미국시장 점유율 10%라는 꿈의 무대에 올랐다. 리콜 사태와 대지진으로 일본 차가 흔들린 덕을 톡톡히 봤다. 삼성전자는 3분기 미국·서유럽·중남미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했다. 그나마 미국 빅3 자동차가 되살아나고 애플이 선전한 덕에 한국 기업이 여론의 칼끝을 살짝 비켜갔는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를 통과한 건 국제무대에서 뛰고 있는 한국 기업 입장에선 천행(天幸)이다. 석가모니·예수 사촌만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면 내 집 문은 걸어 잠그면서 남의 집은 안방까지 넘보는 외국 기업을 환영할 시장은 이 세상엔 없다.

정경민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