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이영일] 피아니스트 이희아(李喜芽)의 베이징 연주회를 참관하고

중앙일보

입력

2011년 11월 19일 저녁 7시30분 베이징 세기극장(世紀劇院)대강당에서 열린 이희아 피아노 연주회는 한마디로 자리를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충격을 안겨준 일대사건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라 하더라도 간절한 기도 속에서 갈고 닦으면 보석처럼 번쩍이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주회에 참석하기 전에 이희아 라는 피아니스트가 손가락 넷 밖에 없는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왔는데 막상 무대 위에 나타난 이희아는 양다리와 발도 없고 무릎으로만 걷는 장애인 중의 장애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인사말에서 자기 딸을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했지만 무릎발로 무대 위를 걸어 나오면서 청중들에게 밝은 미소를 짓는 그녀의 외관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날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담고 무대로 나와서 청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하는 희아의 어머니를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구상의 인류가운데 저런 어머니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잘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증 장애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저런 모습의 희아를 낳은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호모사피엔스로서의 인간은 직립 보행하는 유원인(類猿人)에서 그 첫 모델을 찾는데 희아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힘든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양다리와 발이 없고 손가락도 한 손에 두 개씩밖에 달리지 않은 아이를 누가 사람으로 인정할 것인가. 저런 아이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 보아야 할 것인가.

깊은 신앙의 눈에는 희아도 하나님이 지어 보낸 존재로 보일 것이지만 나같이 약한 믿음의 눈으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 우갑순 여사는 사람 같지 않게 태어난 희아를 자기의 사랑하는 딸로 받아들였다. 그녀를 온 지성으로 키우고 가르쳐서 오늘의 베이징 대극장을 가득채운 청중들에게 베토벤과 쇼팽과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길러내었다. 그 딸이 마침내 하나님을 향하여 영어로 Amazing Grace를 부르는 음악인이 되게 가꾸어 낸 것이다. 통속적 의미의 인간승리라는 말로는 표현이 훨씬 모자랄 정도의 위대하고 숭고한 어머니 사랑의 극치를 들어낸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희아의 표정은 시종 맑고 밝았다. 베토벤의 “열정”을 연주할 때는 청중들에게까지 힘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건반을 쳤다. 특히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열손가락이 다 같이 빠른 속도로 작동해야 제대로 연주가 되는 곡인데 네 개의 손가락을 빨리 움직여 작곡가의 뜻을 애써 살려내 보이는 그녀의 연주 앞에 청중들은 뭉클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연주회장에는 피아노를 배우는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많이 참여했다. 모든 면에서 희아 보다 좋은 여건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자녀들에게 이날의 연주는 놀라운 충격일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희아 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또 피아노 배우기가 어렵다거나 귀찮다고 늑장부리는 아이들에게도 무언가 큰 깨달음을 주었을 것 같다. 연주회의 끝머리에 희아가 중국청중들을 의식해서인지 찬송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영어로 부를 때 극장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우리 협회가 베이징에서 이 행사를 협찬한 것은 정말 잘 한 일 같다. 희아의 피아노 연주는 그 자체로서도 훌륭했지만 사람으로 대접받기 힘든 존재로 태어난 자기 딸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의 건강한 신체 가짐을 하늘의 큰 축복으로 감사하게 생각토록 만든 그 어머니의 놀라운 사랑이 더 고마웠고 더 위대했다. 이 어둡고 답답한 세상을 향해 비추는 한줄기의 큰 빛처럼 어머니의 참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 이 연주회야말로 참으로 값진 행사였다.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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