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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짜리 버킨백용 악어가죽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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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에는 악어 가죽을 고르기만 하는 장인도 있다.

악어 가죽은 ‘가죽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린다. 강철처럼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영원히 반짝이듯, 질기고 튼튼한 악어 가죽의 아름다움도 오래도록 빛난다. 가치는
대물림된다. 이베이에선 족히 30년은 된 듯한 샤넬 빈티지 크록(Croc) 클러치가 3000달러에 매물로 올라 있다. 악어 가죽은 사람의 지문처럼 각각의 무늬를 가졌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무늬에 따라 세상에서 하나뿐인 핸드백이 된다. 품질도 뛰어나다. 내구성과 탄력이 크고유연해 가방이든 신발이든 형태를 잡아 제품을 만들기 좋다. 최고의 진가는 희소성에 있다. 명품의 세계에서 희귀하다는 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희귀하면 희귀할수록 좋다. 모든 악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록돼 있다. 허가 없이 악어 가죽을 거래하는 건 불법이다. 아무나 함부로 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협약이 생겨나기 전엔 야생에서 악어를 사냥해 가죽을 얻었다. 20세기 들어 악어 가죽이 명품의 대명사가 되면서 악어는 마구잡이로 포획됐다. 남획은 계속돼 1954년부터 70년까지 매년 300만 마리 이상이 잡혀 가죽으로 거래됐다.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했고, 악어 가죽의 희소성은 극대화됐다. 국제사회가 악어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악어 가죽은 부와 신분을 상징하는 진정한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크로커다일 vs 앨리게이터
우리말로는 다 같은 악어지만, 종(種)에 따라 크로커다일(Crocodile)과 앨리게이터(Alligator)로 나뉜다. 원산지와 생김새, 시장 가치도 다르다. 하지만 가죽으로
가공돼 핸드백으로 만들어진 후엔 차이를 구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아프리카·호주·동남아 등지의 민물과 바다에 사는 크로커다일은 주둥이가 V자 형태로 길다. 앨리게이터는 미국의 미시시피강과 플로리다에 주로 서식한다. 주둥이는 U자 형태로 뭉툭하다.둘 다 최고 명품에 사용된다. 명품 업계가 선호하는 건 아프리카의 나일 크로커 다일과 아메리칸 앨리게이터 가죽이다.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대체로 덩치가 큰 앨리게이터는 큰 가방을 만들 수 있어 좋고, 작은 편인 크로커다일은 가죽이 더 부드럽다. 뉴스위크의 패션 담당 기자를 지낸 데이나 토머스가 쓴 『럭셔리 :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Deluxe : How luxury lost its luster)』에는 2006년 에르메스 켈리백의 소매가가 나온다. 호주산 크로커다일 가죽으로 만든 32㎝짜리는 1만 9600달러, 같은 크기의 미국산 앨리게이터 켈리백은 1만 6900달러였다.

최고 중의 최고는 바다악어(singapore small scale)다. 주로 호주 북부에서 서식한다. 나일 크로커다일의 다 자란 수컷이 약 3~4m인 데 비해, 바다악어는 7m까
지도 큰다. 모든 파충류 중 가장 크다. 큼지막한 가죽으로 큰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비늘이 작고, 어떤 악어보다 귀하다. 부화율이 낮은 데다 성체로 자라는 시간도 길기 때문이다. 『럭셔리 :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에 등장한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은 “여행 가방만 한 55㎝짜리 버킨백을 만들기 위한 악어 가죽은 1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라고 말한다. 바다악어 중에서도 거대한 것은 그만큼 희귀하다는 얘기다.비교적 저가의 악어 가죽도 있다. 크로커다일 종(種)에 속하는 카이만이다. 악어는 피부를 감싸는 두꺼운 골편(osteoderms)이 많을수록 값어치가 떨어진다. 가죽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카이만이 그렇다. 등과 배의 비늘이 뼈처럼 딱딱해 ‘돌 악어’라고 불릴 정도다.

무두질을 해도 부드러워지지 않고 거칠다. 내구성도 낮아 명품업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에서 대량으로 양식해 흔하기도 하다. 가격은 우리가 흔히 ‘악어 가죽’이라고 하는 것의 3분의 1에서 10분의 1. 하지만 보통 사람이 가죽을 보고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중저가 시장에서 카이만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올봄 파리에서 열린 2011 FW 컬렉션에 선보인 Hermes 악어 가죽 점퍼.3 여성스러운 곡선과 화려한 색깔이 돋보이는 KWANPEN 클러치 컬렉션. 4 GUCCI 1973 컬렉션 숄더백. 1973년 디자인을 현대화한 빈티지 GG 로고 장식이 특징이다.5 FENDI 안나 숄더백. 덮개에 악어 가죽을 사용해 이질적인 멋을 살렸다.6 COLOMBO 카스코 바이크 헬멧. 이탈리아 최고의 헬멧 제작사와 함께 만들었다. 7 CARTIER 칼리브 드 카르티에. 핑크 골드 케이스와 브라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이 어울린 남성용 시계. 8 TOD’S 소프티 백. 2011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빅백이다. 사진 각 브랜드 제공

악어농장에 대리석 깔고 클래식 트는 까닭
사냥이 금지된 이후 악어는 농장에서 사육된다. 야생에서 악어 알을 채취해 농장에서 부화시켜 키운다. 일종의 양식이지만, 알을 악어로 키워 가죽으로 거듭나게
하는 과정은 험난하다.포유류 맹수조차 두려워하는 악어의 둥지에 접근해야 한다. 2009년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소개한 기사를 보자. 에르메스가 직접 악어를 사육하는 호주 북부의 어느 농장 관계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서식지로 날아간다. 몸을 벨트로 묶어 헬리콥터에 매달린 채 조심스럽게 악어 둥지까지 내려간다. 균형을 잡고 바구니에 알을 담는 동안 헬리콥터 조종사는 어미 악어가 수면 아래 도사리고있진 않은지 살핀다. 알은 농장으로 옮겨져 섭씨 32도의 축축한 인큐베이터에서 90일 후 부화한다. 어미를 찾아 꽥꽥대는 수백 마리의 새끼 악어는 우리에서 사육된다.”

이후엔 연령에 따라 분리 사육된다. 덩치 큰 악어가 어린 악어를 물어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장에서 키운다 해도 악어는 악어다. 싸우고 다치기가 다반사다. 죽지 않더라도, 다툼 끝에 상처가 남으면 가죽의 가치가 떨어진다.최상급 악어 가죽이 되기 위해서는 흉터나 흠집이 적어야 한다. 뱃가죽을 보호하기 위해 악어 농장엔 두꺼운 타일과 대리석을 깐다. 상처를 막기 위해 손톱과 이빨도 손질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라고 클래식 음악도 들려준다. 그래도 기어 다니는 동물에게 상처는 삶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매끈한 가죽’은 한 번쯤 의심할 필요도 있다. 농장의 악어는 야생보다 빨리 자란다. 쇠고기·닭고기 같은 고단백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핸드백에 최소 2장, 재킷은 6장 필요
악어 가죽은 뱃가죽과 등가죽으로 나뉜다. 지나치게 두껍고 거친 등가죽보다 튼튼하면서도 부드럽고 탄력 있는 뱃가죽이 주로 쓰인다. 생가죽은 농장에서 공장으
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가죽을 세척하고, 무두질하고, 염색하고, 마무리 과정을 거쳐 패션하우스로 들어간다.요즘 악어 가죽은 화려한 색깔을 입는다. 염색과 광택을 내는 과정은 다른 피혁보다 훨씬 까다롭다. 두툼한 가죽 깊숙하게 얼룩 없이 색을 흡수시켜야 한다. 광택을 낼 때도 유약을 칠하지 않고 모직 펠트 천이나 돌로 잽싸게 가죽을 문질러 유약을 칠한 듯 광택을 낸다.

핸드백을 만들려면 앞면과 뒷면, 최소 2장의 가죽이 필요하다. 에르메스 버킨백 하나를 만드는 데는 3~4장의 악어 가죽이 사용된다고 CEO인 패트릭 토마가 2009년 밝히기도 했다.악어 가죽은 저마다 무늬가 독특해 서로 어울리는 무늬를 찾아 핸드백 형태에 따라 재단한다. 한 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것처럼 이음매 없이 봉제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가죽 장인 중에서도 숙련공만 악어 가죽을 만진다. 에르메스의 경우 최소 10년 이상 가죽을 다룬 장인만이 악어 가죽으로 핸드백을 만들 수 있다.가장 아름다운 중앙 복부 부분은 핸드백의 측면이나 플랩(덮개)에 사용되고 비늘 무늬가 큰 꼬리 아래쪽은 밑판이나 덧가죽으로 사용된다.

최근엔 액세서리나 의류에도 악어 가죽이 사용된다. 재킷을 만드는 데는 약 6장의 가죽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상급 가죽을 확보하는 것은 브랜드의 숙제다. 2001년 구찌가 이탈리아의 악어 가죽 가공업체를 인수한 것이나, 2009년 에르메스가 직접 사육까지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10월 초엔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도 합류했다. 최고 수준의 악어 가죽 가공업체인 ‘헹롱(Heng Long) 인터내셔널’의 지분73.7%를 인수한 것이다. 인수 금액은 1억2390만 달러(약 1370억원). 루이뷔통·펜디·셀린느 등 LVMH가 소유한 브랜드들은 앞으로 ‘헹롱’의 최고급 악어 가죽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로써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악어 가죽 전문업체 중 둘은 에르메스, 하나는 구찌, 또 하나는 LVMH 아래로 들어가게 됐다.

“에릭 클랩턴의 악어 기타케이스 1억5000만원 넘을 것”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검정 악어 가죽으로 만든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다. 1937년 처음 선보인 에르메스의 ‘삭 아 데페슈(Sac a Depeche)’ 모델로,
아내 재클린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생을 마감한 64년 댈러스 방문 때도 이 가방을 갖고 있었다. 98년 경매에서 70만 달러에 낙찰됐다.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린 윈저공도 이 가방을 들고 다녔다. 현재도 주문 제작이 가능한데, 악어 가죽인 경우 4~5년을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2008년 에릭 클랩턴은 에르메스에 악어가죽 기타 케이스를 주문했다. 포플러 나무로 틀을 짜고 최고급 크로커다일 가죽으로 감싼 기타 케이스의 내부는 푸른색 실크 벨벳으로 마감했다. 정확한 값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은 약 10만 달러(약 1억 5000만원)로 추정했다.

이처럼 값지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한편으로 부담이다. 우리나라에서 악어백이 ‘시어머니를 위한 예단 1순위’ ‘사모님의 잇백(it bag)’ 이미지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색깔은 화려하고 디자인은 젊어진 악어 제품이 속속 등장해 20~30대로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펜디의 ‘안나백’은 전체적으로 소가죽을 사용하면서 덮개에 악어 가죽, 도마뱀 가죽 등 독특한 가죽을 사용했다. 이질적인 질감으로 멋을 살리면서 가격 부담을 줄인 것이다. 콜롬보의 남성용 백팩 ‘타루가’도 본체는 소가죽, 덮개는 악어 가죽이다. 싱가포르 브랜드 콴펜은 핑크?옐로 등 밝고 화사한 색깔을 사용해 중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악어백의 무게감을 덜었다. 최근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사용자가 늘면서 악어 가죽을 이용한 케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지갑·명함지갑 등 소품을 강렬한 악어 가죽 제품으로 선택하는 것도 고급스러운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사진 조용철 기자, 촬영 협조= 대원무역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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