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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한 점 718억!…중국 미술 더 띄우는 ‘중화주의’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1 정판즐의 39초상39(2007), 캔버스에 유화, 100X80㎝

뜬다 뜬다 해도 이렇게까지 뜰 줄은 몰랐다. 중국 작가 제백석(齊白石·1864~1957)의 작품이 지난 5월 경매에서 718억원이 넘게 판매되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최
근 세계 미술시장 분석회사인 ‘아트 프라이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징은 미술자본이 몰리는 둘째 도시로 등극했다. 분명 이유가 있다. 우선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중국 미술은 정치적 팝과 냉소적 현실주의라는 명확한 마케팅 포인트가 있다.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 위엔민 준을 ‘사대천왕’이라 부르는 명명법은 작가를 대중스타화하며 흥미를 부추긴다. 무협지에서나 쓸 법한 이 명명법은 원톱(one-top) 선발 구조의 위험성을 피하고 여러 작가를 동시적으로 브랜드화하는 데 유효한 장치다. 위엔민준의 웃는 남자, 팡리쥔의 건달들 등 캐릭터화된 중심 인물의 설정은 중국적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어내며 많은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또 조각으로까지 옮겨지면서 다양한 시장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하는 상업적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출간된 중국 현대미술과 관련된 책들은 많지 않은데, 그중 이보연의 『이슈, 중국 현대미술』(2008, 시공사, 2만7000원)과 우홍의 『작품과 전시』(2011, 문사철, 번역 맹형재-장완석, 3만원) 두 권이 읽을 만하다. 이보연의 책은 우관중, 황루이, 조우춘야, 마오쉬휘, 예용칭, 왕광이, 장샤오강, 팡리쥔, 위엔민준, 정판즐, 펑정지에 등 주요 작가 12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쓴 글이다. 작가 전기적인 요소와 작품론이 결부된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힌다. 여기에 베이징,상하이,홍콩,광저우의 미술 중심지와 기관에 대한 안내 등 중국 미술의 큰 그림을 전달하려는 친절함까지 베풀고 있다.

현재 시카고대 교수로 있는 중국인 우홍의 책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 전시와 담론의 진행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우홍의 책에는 쉬핑, 차이궈창, 황용핑, 창페이리, 홍하오, 저우테하이, 쿠원다 같은 1990년대의 실험예술가들이 포함돼 있다. 우홍은 “20년간의 중국 정치경제 개혁이 없었다면 이 예술은 근본적으로 생겨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는 특이한 이종 결합은 지난 20년간 다른 나라는 가질 수 없었던 독특한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왔다. 현대 중국 미술은 예외없이 이러한 자국의 역사적 경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왔으며 그러면서도 중국전통에 긴박하게 묶여 있다. 이것이 서구 미술계가 집약된 예술적 화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미술작품들만을 양산하고 있을 때쯤 등장한 중국미술이 세계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동인이 된다.

중국 미술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은 문화혁명(1966~76)과 천안문 사태(1989)다. 어린 시절 문화혁명의 혹독한 시기를 거치며 억압적 체제에 대한 반항심을 키워온 세대가 천안문 사태의 주역이 된다. 대부분의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이 세대에 속한다. 이보연의 책은 작가 개개인이 겪은 문화혁명기의 추억과 에피소드에 관해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장샤오강의 작품은 문화혁명에 대한 기억을 현재화시킨 것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등장한 미술을 ‘후 89 예술’이라 칭한다. 개혁으로 풍요로워지는 경제와 구태의연한억압적인 정치 사이에 태어난 미술들이다. 우홍은 90년대 이후의 중국미술은 세계 미술의 일원으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국제적인 양상을 갖게 되었다고 지적한다.사실 정치적 팝과 냉소적 현실주의에 먼저 열광한것은 서구의 화랑과 미술계였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했다는 시장논리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 중국 공산주의를 문화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미술을 발견하고 열광한 것이다.

90년대 서구 화랑과 미술계의 긍정적인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우홍은 이 점이 “냉전 논리에 입각한 오독”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중국 미술은 20년간 서구 미술의 100년을 압축했으며, 90년대부터는 해외 모방을 넘어섰다고 평가된다. 중국 내에서 벌어진 전위예술 운동은 시작부터 곧바로 글로벌 현대미술의 한 분파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것은 강력한 중국 중심적인 사고다.

베이징 현지에서 일하는 전문가 황창희씨는 중국 컬렉터들의 특징 중 하나로 과시욕을 뽑는다. 오랫동안 전시된 작품을 한국 컬렉터들은 안 팔린 인기 없는 작품으로 인식하는 반면, 중국 컬렉터들은 오래 전시해서 유명해진 작품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유명해진 작품을 비싸게 사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제백석의 작품이 700억원을 넘길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에게는 제백석이 피카소보다 비싸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그들은 또 어떤 작가이건 중국 작가를 피카소보다 더 비싼 국제적 유명작가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고가로 작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자본주의적 정장을 차려입은 문화적 중화주의다. 중국 미술 붐은 단순한 경제력,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 핵심에는 예술가, 평론가, 컬렉터들을 하나로 만드는 문화적 중화주의가 놓여 있다.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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