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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시대, 승부처는 서비스 산업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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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02면

“천년 고도에 ‘콘돔 공장’을 짓다니…. 절대로 허가할 수 없는 사업입니다.”
1980년대 초 명성그룹이 경주에 콘도미니엄을 짓겠다고 하자 지방공무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관광업계의 원로 R씨가 우스갯소리처럼 들려준 말이다. “당시엔 ‘콘도’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어요. 오죽하면 ‘콘돔’이라고 했을까요.” 전두환 정권 시절 관광·레저사업으로 불꽃같이 일어났던 명성그룹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의 여파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리조트와 관광시설은 지금도 주인과 간판을 바꿔 전국 도처에 남아 있다.

이양수의 세상탐사

R씨가 전하는 또 다른 일화다. “82년 건설부에 실버타운 건설을 신청했는데 ‘충효사상에 어긋나니 허가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부모·자식이 따로 사는 걸 장려할 수 없다는 겁니다. 기가 막혔지만 어떡합니까. 칼자루는 공무원들이 쥐고 있는데….” 다행히 실버타운 대목에선 ‘우리도 20년, 30년 뒤를 내다봐야 한다”는 신현확 전 총리의 권유에 해당 부처가 자세를 바꾸었다고 한다.

R씨의 얘기가 문득 떠오른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괴담’을 보면서다. 21세기 10대(大) 무역대국이라는 한국의 국회는 ‘최루탄 소동’으로 FTA 비준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것도 모자라 FTA 반대진영에선 ‘비준 무효’라며 연일 가두시위를 벌인다. FTA 전선을 선과 악, 애국과 매국, 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으로 나눌 뿐이다. 그런 구호와 선동이 내년 총선·대선을 앞둔 야권의 결속력을 높여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익과 민생에 무슨 도움을 줄지 답답하다. 혹여 ‘콘도’와 ‘콘돔’의 차이를 알면서도 사태를 오도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일자리와 복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대99’의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확산되는 최대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관광·교육·유통·의료·환경 등 서비스산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블루 오션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셜 커머스(social commerce)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는 불과 26세에 마케팅과 정보기술(IT),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트렌드를 관통하는 사업영역을 개척해냈다. IT강국의 실력에다 한류(韓流) 확산, ‘다이내믹 코리아’의 국가이미지를 더하면 또 다른 기적을 만들 수 있다.

60대 후반의 전직 외교관은 최근 “미국·유럽과 체결한 FTA로 인해 농업보다 서비스업이 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들의 경쟁력을 잘 아는 터라 걱정도 많았다. 서비스 개방 폭과 속도에 대한 우려였다. 세계적 유통업체가 결사적으로 들어오면 한국의 이마트·롯데마트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토종 영어학원이 미국·영국의 교육체인망을 앞설 수 있을까.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전체 고용의 68%, 부가가치의 58%를 차지하지만 생계형 영세 업체가 대부분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명예퇴직자들은 1억원 안팎의 소자본으로 커피숍·제과점·식당 등을 창업하지만 십중팔구 두 손을 들고 만다. 가게 임대료에 울고, 불황과 경험 부족으로 쓰러지는 이가 부지기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서비스산업 후진국’에 속한다.

지금은 FTA 무효를 외칠 때가 아니다. 90년대 후반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뒤떨어진 중국도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국유기업 개혁을 단행했다. 기업 매각과 폐업, 인력감축 등으로 월 200위안(元·약 3만원)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개혁 실업자’들이 속출했다. 그때 꺼낸 카드가 바로 재교육·재훈련과 함께 서비스업 창업 장려책이었다. 개방 충격의 완화와 내수시장 확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FTA 시대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농업과 제조업으로는 ‘고용창출 없는 성장’의 시대를 이겨낼 수 없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더 많이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라고 대기업들을 윽박질렀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가. 그렇다고 퍼주기식 복지 확대도 한계가 있다. FTA 시대에 승부는 결국 서비스업에서 난다. 규제와 편견을 확 풀어 선진국 기업과 경쟁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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