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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런 대접 받을 것” … 아버지가 상욱 구두 매일 닦아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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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19면

나상욱 선수가 지난 10월 3일 라스베이거스 서멀린 골프장에서 열린 PGA투어 저스틴 팀버레이크 오픈 마지막 날 챔피언 퍼팅을 한 뒤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0월 3일(한국시간) 라스베이거스 서멀린 골프장에서 벌어진 PGA 투어 저스틴 팀버레이크 오픈. PGA 데뷔 8년 만에 첫 우승을 눈앞에 둔 나상욱(28)은 마지막 홀 그린으로 걸어가면서 카메라에 대고 “형에게 인사하고 싶다. 형 잘 지내지. 나 조금 있으면 한국 가니까 그곳에서 만나”라고 말했다. 나상욱은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 부모님이나 애인이 아니라 형을 불렀다.

8년 만의 PGA 정상 합작한 나상욱 - 상현 형제

그의 형은 나상현(31)씨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형제는 199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다. 한국에 있을 때 골프를 시작한 나씨는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형을 따라 골프를 시작한 동생은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며 주니어 시절 전국 대회 100승을 거뒀다. 부모는 ‘형은 공부, 동생은 골프’라고 정리를 해줬다.

상현씨는 대학을 집 근처의 UCLA에 갔다. 유난히 형을 따르던 동생의 훈련 파트너로, 곁에 있어주고 싶어서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상현씨는 동생의 영향으로 UNLV(네바다 주립대 라스베이거스 캠퍼스)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나상욱은 2006년 손을 다쳤다. 투어 카드를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그때 상현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동생의 캐디를 맡았다.

동생 나상욱의 전세기에 함께 탄 형 상현씨(왼쪽).

상현씨는 PGA A클래스(골프 레슨과 골프장 운영·관리를 할 수 있는 자격증)를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체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경희대 골프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그러자 동생도 형을 따라 경희대에 입학했다. 나상욱은 힘들 때 형에게 전화를 해 심리상담을 하고, 스윙에 관한 조언도 얻는다. 8년 만의 우승은 형제가 함께 만든 것이다. 22일 형을 만나 동생에 대해 들었다.

-나상욱이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웠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동생이 골퍼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프로처럼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반바지에 옷을 대충 입지 않고 정장 바지에 상의는 벨트 속에 단정히 넣어야 했다. 아버지는 동생의 구두를 매일 닦아줬다. 상욱이가 그만하시라고 하자 ‘너는 이런 것들은 남들이 해주는 위치에 갈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마라’고 하셨다. 성공을 위한 최면을 걸어준 것이다. 걸음걸이·행동·말투도 철저히 교육시켰다.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동반자를 만나면 나이가 많아도 당당하게 눈을 보고 절대 고개를 조아리지 말라고 했다. 상욱이는 절대 부정적 표현을 하지 않는다. ‘뭐가 안 됐어요’가 아니라 ‘뭐가 좀 더 잘 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한다.”

-타이거 우즈와 비슷한 것 같다.
“우즈가 한 수 위다. 그는 철저히 만들어진 선수다. 그는 걸음걸이도 당당하고 턱을 약간 내린 상태로 말한다. 옆에서 누가 불러도 고개를 번쩍 들지 않고 턱을 내린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린다. 그럴 때 눈빛이 무섭다. 경기 중에도 상대의 기를 죽이는 게임즈맨십을 한다. 중요한 퍼트를 넣고 나서 하는 어퍼컷 세리머니도 면밀히 준비된 것이다. 그는 공이 홀에 들어가고 0.5~1초 정도 지난 후 이 동작을 한다. TV 카메라가 공이 들어가는 것을 잡은 후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상욱은 1급 선수가 되기에 거리가 부족한 것 아닌가.
“상욱이가 처음 골프를 배울 때는 멀리 치는 것보다 다양한 구질의 샷을 치는 샷 메이커의 시대였다. 과거에 있던 발라타 공은 큰 충격을 받으면 탄도가 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볼과 클럽은 스핀양을 대폭 줄이고 토크도 감소해 힘껏 때려도 똑바로 간다. 그러면서 스타일이 장타 쪽으로 변했다. 동생은 주니어 시절 이 변화를 알았지만 스타일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가 길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진 것도 있다. 거리가 부족해 쇼트게임의 강자가 됐다. 1년에 로브웨지와 샌드웨지를 5개씩 바꿀 정도로 쇼트게임을 연마했다. 또 스윙 박사다. 대회 전 연습을 할 때 다른 선수들이 스윙을 봐달라고 할 정도로 스윙 이론에 정통하다. 어려서부터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유명한 코치들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그 이론을 다 꿰고 있다.”

-슬로 플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린에 올라갈 때까지는 늦지 않다. 눈이 나빠 그린의 브레이크를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루틴도 좀 길다. 공을 놓고 나서 다른 선수는 그냥 치는데 상욱이는 뒤에 가서 제대로 맞춰져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평생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역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루틴을 바꾸면서까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다른 선수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래도 성격 급한 선수는 참기 어렵다고 한다.
“크리스 라일리라는 선수는 동반자의 공이 그린에 떨어지기도 전에 공을 칠 정도로 급하다. 그런 선수 템포에 따라갈 필요는 없다. 또 동생보다 더 늦은 선수들도 있다. 백인 스포츠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수도 있다.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만만해서 받은 비판도 있을 것이다. 우승하고 나서는 보도 태도가 달라졌다.”

-올해 한 홀에서 16타를 친 일이 있다.
“티샷이 숲으로 들어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티로 돌아가 쳤는데 또 그곳으로 갔다.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해야 했는데 뒷조가 밀려 있어서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갈 수는 없었다. 대안도 없었다. 홀 후방으로 가면 계속 숲이고, 2클럽 이내에는 모두 비슷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냥 쳤는데 나무에 맞고 다시 돌아와 몸에 맞아 벌타를 받고, 헛스윙도 했고 어드레스가 안 나와 왼손으로도 쳤다. 얼마나 많이 쳤는지, 나와서 몇 타를 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룰을 지키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화위복이었다. 마침 방송사의 요청으로 마이크를 차고 경기 중이었다. 숲에 들어가서 고생하는 상황이 생생하게 중계됐다. TV를 본 아마추어 골퍼들이 동질감을 느껴 트위터 팔로어가 4000명 늘었다. 미국에서 풋볼 등 스포츠 스타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은데 룰을 지키고 16타를 치고도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느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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