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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 대구는 아직도 녹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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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1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단풍나무 터널 모습. 단풍이 들지 않아 여름철이란 착각이 들게 한다. 연말을 앞두고 설치된 장식용 전구가 눈길을 끈다. [프리랜서 공정식]

“참 이상하네. 겨울이 코앞인데도 단풍이 들지 않으니….”

 20일 오후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산책 중이던 이점숙(67·여)씨는 연방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씨는 “해마다 11월 초쯤이면 공원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덮여 정말 아름다웠다”며 “지금까지 청단풍 잎이 물들지 않은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국채보상공원의 종각 뒤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사이 70m는 단풍관광 명소다. 산책로 양쪽에 청단풍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이곳은 불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줄을 잇는다. 도심 단풍 관광 명소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대구시는 지난 1일 이곳 등 21개소를 ‘추억의 가을길’로 지정했다. 단풍과 낙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20일까지 낙엽을 쓸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곳 청단풍 잎은 여전히 녹색을 띠고 있다.

 도심 공원에 가을 분위기가 사라졌다. 매년 화려하게 물들던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하기 어려워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2·28기념 중앙공원, 경상감영공원은 도심에서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해마다 11월 초에서 중순까지 느티나무·왕벚나무·단풍나무·대왕참나무 등의 잎이 빨강·주홍·노랑 등으로 곱게 물든다. 그러나 올해 모습은 다르다. 청단풍 등 일부 나무는 지금까지 단풍이 들지 않았다. 느티나무에는 바짝 마른 잎이 붙어 있다. 낙엽을 밟으면 바스라져 먼지도 많이 날린다. 도심 분위기까지 칙칙할 정도다. 공원관리사무소 측은 예년과 달리 낙엽 치우기에 바쁘다. 가을의 정취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기온 영향이 크다. 단풍이 드는 시기인 10월 25일부터 11월 10일까지의 기온이 지난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 기간 대구의 기온은 14∼20.2도로 지난해 7.7∼16.4도보다 크게 높았다. 같은 기간 비가 온 날도 5일로 지난해 2일보다 많았다. 단풍은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많아야 아름답게 물든다. 청단풍나무가 우거져 터널을 이루면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북대 주성현(임학) 교수는 “식물은 기온이 내려가면 생장을 멈추고 단풍이 든다. 예년보다 늦가을 기온이 높았던 게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채보상공원 김찬경 관리소장은 “기상 변화로 매년 단풍이 드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며 “내년에는 청단풍이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단풍=기후 변화로 나뭇잎이 빨갛거나 노랗게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을 말한다. 식물은 기온이 5도 정도 되면 생장을 멈춘다. 이때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파괴되고 안토시아닌(빨강)·크산토필(주황)·카로틴(노랑) 등의 색소가 나타나면서 단풍이 든다. 9월 하순 설악산과 오대산 등 높은 지대에서 시작해 11월 상순에는 남해안과 한라산까지 단풍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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