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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중문화 3차 개방과 성인용 게임

중앙일보

입력

99년 국내에 출시된 일본 연애시뮬레이션의 간판 게임인 〈두근두근 메모리얼〉을 해본 사람은 뭔가 허전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바로 오프닝과 엔딩음악에 코러스만 간간이 들리고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카리라는 여자 캐릭터가 노래방에 가는 이벤트에서도 썰렁한 음악만 잠시 흐르고 끝난다. 원작에 있었던 일본 노래가 삭제되었기 때문에 게임자체가 엉성하게 된 케이스이다.

지난 6월27일 발표된 일본대중문화 3차 개방 조치로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밀려 올 전망이다. 전면 개방은 아니지만 영화, 음반, 비디오 등이 예전에 비해 많은 부분의 제한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경우엔 시장규모가 큰 '가정용 비디오게임물'로 일컫는 게임기용 소프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임물이 일본원판으로 수입될 수 있게 됐다.

게임은 다른 일본 문화 상품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컨버전 되어 국내에 유입이 되었다. '은하철도 999'나 '우주소년 아톰'등의 애니메이션부터 너구리, 겔러그 등의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까지 현재 게이머들의 시작은 일본의 것과 함께였다. 일본에서 제작한 PC게임인 〈파이날 판타지〉, 〈삼국지〉, 〈영웅전설〉시리즈 등은 이미 수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했고 국내 게임계 태동시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갖는 반일감정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가장 친숙해하는 문화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미국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는 달리 일본에서 제작된 것들은 정부의 일본 상품 규제로 인해 철저하게 컨버전되어 출시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국적의 상품으로 느껴져왔다. 초창기 단순한 스크롤식 액션게임이나 중세 유럽의 판타지 게임들이 대부분일 때에는 게임에 등장하는 문화의 국적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일본색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연애시뮬레이션 장르가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이머의 섬세한 감정 이입이 관건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캐릭터와 배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제작된 게임들은 가장 일본적인 것들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들이 국내에서 무리하게 컨버전되면서 게임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 성인용 연애 어드벤처 게임회사인 일본 엘프의 〈동급생〉은 98년 2편이 국내에 출시되기 이전에 불법복제로 유명세를 날렸다. 〈동급생〉같은 일본의 dos/v용 게임은 폰트의 단어만 한글로 바꿔놓으면 대사의 내용을 알 수가 있었고 모 동호회에서 훌륭하게 한글화를 마쳐놓은 패치가 통신망을 통해서 전파되면서 저연령층까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동급생〉외에도 〈노노무라 병원〉, 〈하원기가 일족〉등의 엘프의 18세미만 금지등급의 게임들이 대거 국내에 유입이 되어 소위 18금 게임 매니아층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동급생〉은 고등학생의 애정행각을 다루지만 철저하게 성을 상품화한 정통 성인물이다. 편의상 어드벤처로 분류되지만 외길로 나아가는 미국식 어드벤처와는 달리 게이머가 외길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자유도를 느끼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필드를 돌아다니며 시간대별로 이벤트가 구성되는 이 특이한 게임은 이후 발매되는 연애 게임에서 코나미의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육성방식과 함께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성적인 요소가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컨버전되면서 많은 부분이 삭제, 수정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는 성인용 게임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폭력물보다 음란물에 더 가혹한 게임 심의제도 때문에 일본 성인물을 가까운 시일내에 매장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렇듯 〈동급생2〉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많은 게이머가 접한 일본 성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문화에 대한 어정쩡한 정부의 규제와 성인물을 인정하지 않는 국내의 정서로 말미암은 희생물이 되고 만 것이다.

성인용 게임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려는 국내 심의제도의 정책은 반대로 불법유통을 장려한 격이 되어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게임이 미성년자의 전유물이 아닌 만큼 성인들을 위한 게임도 필요한 시기이고 미성년자를 위한 확실한 규제정책도 세워져야 한다. 또한 몇 년전부터 게이머들사이에 불고 있는 일본 폭력물이나 음란물에 대한 무분별한 집착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정부에서 행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러한 음지의 게이머들을 양지로 끌어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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