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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통독 비결, 원대하고 치밀한 벌교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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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호 08면

공성전(攻城戰)은 승리를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사진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예루살렘을 둘러싼 공성전 장면이다.

“휘이잉∼”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큰 돌들이 하늘을 난다. “꽝! 꽝!” 순식간에 와르르 성벽이 무너진다. 커다란 방패들을 위와 옆으로 맞댄 병사들이 마치 거북 등과 같은 모양을 하고 성벽을 향해 전진한다. 용감한 병사들은 쐐기 모양의 커다란 나무를 들고 성문을 향해 돌진한다. 긴 사다리를 성벽에 기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4> 세상은 전쟁터, 어떻게 싸울 것인가(하)

이들을 향해 성 안의 병사들은 뜨거운 물과 기름을 쏟아붓는다.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를 걷어찬다. 수많은 병사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다가 개미처럼 떨어진다. 온몸에 불이 붙어 이리저리 뒹굴며 비명을 지른다. 검붉은 화염(火焰)과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이 따로 없다.
자, 이러한 장면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그렇다. 공성전(攻城戰)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제작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는 공성전 장면이 아주 잘 묘사돼 있다. 영화는 1187년 제2차 십자군전쟁 당시 무슬림 세계의 맹주 살라딘(Saladin)의 공격을 받아 끝까지 저항하는 예루살렘 성의 숨 막히는 공방전을 그렸다.

2011년에 나온 한국 영화 ‘평양성’은 나당(羅唐)연합군이 고구려를 삼키기 위해 마지막 남은 보루 평양성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았다. 제목이 평양성인 만큼 그럴듯한 공성 장면을 많이 넣었다. ‘킹덤 오브 헤븐’이나 ‘평양성’에서 느끼게 되는 건 공성전은 참 어렵고 승패와 관계없이 피아가 많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서희 ‘강동 6주’ 담판, 伐交 성공사례

싸움의 네 단계는 벌모(伐謀), 벌교(伐交), 벌병(伐兵) 그리고 공성(攻城)이다. 벌모는 지난 호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이제 나머지 단계를 살펴봐야 한다.
서두에서 살펴본 최악의 싸움인 공성은 마지막 단계다. 가장 나쁜 선택인 공성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그 앞 단계인 벌교와 벌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벌교(伐交)는 상대방의 교우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을 감싸고 있는 동맹관계를 끊어버려 고립시키는 것이다. 떡을 들고 있는 녀석에게 “떡 내놔!”라고 점잖게 말을 했는데도 녀석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순순히 말을 들을 태도가 아니다. 뭔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친구들을 믿고 있는 것이다. 비록 녀석은 약할지라도 녀석의 친구들 중에 힘깨나 쓰는 동네 애들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변 친구들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벌교다. 벌교에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위협(威脅)’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위협을 주어 그 녀석과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 녀석과 같이 놀면 나중에 엄청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과 공갈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 방법으로 떨어져 나간다. 두 번째는 ‘회유(懷柔)’와 ‘설득(說得)’이다. 이 방법을 시도하려면 어쩌면 떡 한 조각보다도 더 많은 돈이 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비용 면에서 볼 때 공성보다는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보다 현명한 방법이 있다면 주변 애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동시에 가능하다면 그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진(秦)의 전국 통일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합종연횡(合從連橫)이나 세 치의 혀로 거란의 80만 대군을 상대했던 서희(徐熙)의 담판(談判)은 벌교의 대표적인 예다.

사회주의와도 손잡은 철혈재상
여기서 우리는 눈을 서방으로 돌려 철혈재상(鐵血宰相)이라 불린 비스마르크(Bismarck)의 외교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비스마르크는 오늘날 독일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이른바 ‘외교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연방만이 유일하게 독일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되면 아무리 정적(政敵)일지라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사회주의자를 혐오하면서도 1863년 독일 최초의 사회당인 독일노동자연맹을 창설한 페르디난트 라살과도 친분을 쌓았다.

독일 통일을 이루기 위해 프로이센이 상대해야만 하는 주변국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였다. 그는 먼저 오스트리아를 겨냥했다. 당시 헝가리를 통치하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항거하는 헝가리 혁명주의자들과도 깊숙이 접촉해 오스트리아에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러시아와는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술을 발휘했는데, 1863년 1월 폴란드에서 항거가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재빨리 러시아 편을 들어 지지했다. 훗날 독일 통일의 든든한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프랑스 역시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술을 발휘했다. 1865년 프랑스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으로써 우의를 다졌고, 나폴레옹 3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강력한 이웃인 러시아와 프랑스에게서 내정불간섭을 보장받자 드디어 비스마르크는 1866년 6월 17일 선전포고를 하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보오전쟁(普墺戰爭)이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했다. 이때 프로이센의 군부는 오스트리아를 계속 공격해 전멸시킬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 경우 다른 나라의 개입이 있을 것을 우려한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제 비스마르크의 유일한 걸림돌은 프랑스였다. 1870년 공석 중인 스페인 왕위 계승문제가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의도적으로 프랑스가 꺼리는 인물을 지지하고, 7월 14일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한다. 보불전쟁(普佛戰爭)이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수완으로 프로이센의 우군이 된 남부독일국가들이 즉각 전쟁에 가담했고 결국 프랑스는 무릎을 꿇었다. 1871년 1월 18일 포성이 아직도 그치지 않은 가운데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빌헬름 1세를 황제로 한 독일 통일이 선포되었다. 독일의 통일은 외교의 달인 비스마르크에 의한 치밀하고도 원대한 벌교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아니!” 주변의 친구들을 모조리 제거했는데도 녀석이 버티고 있다. 이제 말로 하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 그래서 이어지는 수순이 세 번째 단계인 벌병(伐兵)이다. ‘병력을 베어버린다’는 의미다. 군사를 보내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개인적으로는 싸움(duel)이 되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전쟁(war)이 된다. 이때부터는 눈에 보이는 직접 피해가 따른다. 녀석이 움켜쥐고 있는 떡에도 피가 묻는다. 내가 빼앗더라도 피가 묻고 흙이 묻은 떡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현명한 리더, 굴복보다 심복 모색
이렇게 벌병을 했는데도 피멍이 들고 코피가 터진 녀석이 끝까지 버티고 있다. 그것도 잘 준비된 곳에 들어가서 마지막까지 항전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 지독한 녀석이다. 뭔가 단단히 각오하고 있는 게다. 그래서 이제 어쩔 수 없이 최악의 단계로 가게 된다. 바로 마지막 단계인 공성(攻城)이다. 공성까지 갈 경우 대부분 자존심 싸움이 많다. 이쯤 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법정소송까지 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 공성의 단계에 갔을 때다. 갈 데까지 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 맞붙어 싸운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요행히 이겼다 하더라도 이런 승리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와 같다. 상처뿐인 승리, 상처뿐인 영광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것만은 피하는 게 현명한 싸움의 방식이다. 손자도 모공(謀攻) 제3편에서 말하기를 공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을 때 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은 공성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두 번째 단계인 벌교까지만 잘해도 ‘깨어짐’ 즉 ‘파(破)’를 피할 수 있는 ‘전(全)’을 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벌모와 벌교까지가 진정한 의미에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부전승(不戰勝)’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전략가는 벌모·벌교 단계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략가라 할 수 있다. 전략가도 급이 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벌모·벌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벌병 그리고 최후의 선택인 공성까지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전승도 싸움의 연속선에 있는 것이다.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있다. 굴복(屈服)과 심복(心服)에 대한 것이다.
현명한 리더는 굴복보다는 심복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굴복은 힘이 약할 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특히 회사나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입이 포도청이라 대체로 굴복의 자세로 살아가기 쉽다. 따라서 힘이 강해지거나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쳐들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항복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심복은 다르다. 심복은 심열성복(心悅誠服)의 준말로서 충심(衷心)으로 기뻐하며 성심(誠心)을 다하여 순종(順從)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항복을 거둘 때 진정한 승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비스마르크가 보오전쟁에서 이기고도 오스트리아의 땅을 한 치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심복의 의미를 잘 알았던 비스마르크다운 행동이다. 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위정자들이나,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가들이나, 사회를 이끌고 있는 각계각층의 리더들은 이런 심복의 승리를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리더들이 항상 떨치지 못하는 고민일 것이다. 손자가 말한다. 싸우지 마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다면 반드시 이겨라. 이기면 해적도 영웅이 되고 해적선도 전설이 된다. 굴복보다는 심복을 얻어라. 그러나 명심하라. 때에 따라서는 지는 것이, 아니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을.


노병천 육사(35기) 졸업 뒤 합참전략기획장교, 미국지휘참모대학 교환교수를 지낸 전략 전문가다. 34년동안 전쟁사와 전략 연구에 몰두했다. 이순신 전문
가로 이름이 높다. 이순신대학 불패학과-명량대첩등 저서 29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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