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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연애하는 중년, 당신은 여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여자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가장 큰 두려움은 뭘까. 아마 ‘이젠 누가 나를 여자로 볼까’일 게다. 내 경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좀 괜찮다 싶은 이웃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이빨에 낀 찌꺼기를 쩝쩝 빼낼 때 그 순간이 찾아왔다. 옆에 있던 나는 여자도 뭣도 아니었다. 세상이 우리들의 서러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게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무뎌지고 수치심이 없어지면 여성성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가 낭만적 연애를 꿈꾸는 문학소녀의 감수성이라도 보일라치면 주책이라니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입을 삐쭉 내밀어보지만 실은, 젊고 탱탱한 여자가 아니면 여자도 아니라는 식의 차별적 시선과 갈굼은 너끈히 감당할 정도로 이미 우린 나잇값만큼 노련(뻔뻔)해져 있다. 말이 난 김에 수치심도 없이 말해 볼까. 되레 우리가 ‘여자’를 진짜로 놔버리는 순간은 우리가 더 이상 섹스를 ‘안’ 하게 되는 그 시점인 것 같다. 그 외의 모든 외형적 노화증상은 피식,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 나 말고는 주변의 그 누구도 그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니 이 얼마나 슬픈 혼자만의 졸업식인가.

 언뜻 보면 아름다운 체념이자 한낱 ‘여자’가 아닌 원숙한 ‘인간’으로 초월하는 여정이라 우아를 떨 수도 있겠다. 혹자는 ‘다들 그럴걸? 어쩔 수 없지’라며 사우나에서 애먼 땀 빼며 그르렁 신음할 수도 있겠다. 하긴 나도 예전에는 사랑이나 연애나 섹스 따위는 젊은 사람들만 하는 특권이라 생각했다. 중년이 된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우리에겐 여전히 긴 ‘여자로서의’ 인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겠지만, 그녀들 중엔 상당수가 여전히 누군가와 연애하고 섹스하며 우릴 배신 때리고 있을 것이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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