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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우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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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택
시인

요즘은 웃을 일은 점점 없어지고 울 일은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울려고 하면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웃을 일도 많지 않은데, 울음마저 메말라가고 있다. 남수단에서 봉사와 선교활동을 한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며 눈물을 흘린 이후 나도 거의 울어본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공 야고보 수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남수단 사람들은 거의 울지 않는데 이태석 신부가 그들을 울리는 걸 보면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고 깊은가를 알 수 있다고.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과 싸우고 인종 간의 갈등에서 살아남으려면 강인한 정신이 필요할 것이고, 그래서 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생긴 모양이다.

 이태석 신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남수단 사람들은 대부분 생전의 그를 떠올리면서 울었다. 그 울음은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뚫고 올라온 격렬한 울음이었다. 소외된 이들에게 자상한 아버지나 친구처럼 다가온 이태석 신부의 인간적인 모습이 눈물샘을 강하게 자극한 것 같다. 그럴 때 울음은 자기도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 울음은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서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온몸의 힘이 눈물로 모여 눈과 목구멍을 강제로 밀고 올라올 때 그것을 억누르려는 정신이나 의지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울음을 참고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태도가 읽혔다. 소리는 작거나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울음을 참느라 온몸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울음은 견딜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을 녹여서 가볍게 하기 위한 몸의 장치인 것 같다. 몸이 처리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나 고통이 몸안으로 들어왔을 때 몸이 살기 위한 자구책으로 울음을 울어 그 무거운 것을 배출해 주는 것 같다. 한참 울고 나면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깨끗하게 씻긴 듯 상쾌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울음에는 즐거움도 있다. 생전의 박완서는 ‘정말 비통할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오다가도 슬픔에 적당히 감미로움이 섞이면 울음이 잘 나온다’면서 울음의 ‘달착지근한 맛’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울음은 좋지 않은 감정을 씻어내는 보약이 될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뜬금없이 울 수는 없다.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울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감추면서 혼자 은밀하게 울음을 즐기고 싶은 경우가 더 많다. 마음껏 울면서도 창피당하지 않고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울음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슬픈 음악이나 영화나 소설은 그런 욕구를 남들이 눈치채지 않게 충족시킬 수 있게 해준다. 슬픈 노래는 가락과 떨림과 음색으로 만든 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컷 수다를 떨고 나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후련해졌다면 그건 떠드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울었다는 증거다.

 시를 읽고 쓰는 것도 좋은 울음의 방법이다. 시는 감정을 절제시켜 겉으로는 평온하고 즐거우면서도 속으로는 마음껏 울게 하는 속울음의 형식을 갖고 있다. 좋은 시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한껏 울게 해주면서도 전혀 울지 않고 평온하게 독백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얼굴과 입은 울지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격렬하게 우는 형식이라고나 할까?

 울음과 담을 쌓고 지내거나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사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장석남 시인은 울 일이 생기면 간혹 벌판으로 버리러 간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여행이나 노래나 영화나 책의 자극을 받으며 제 울음과 벗삼아 볼 일이다.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