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 전기 모으기 훈련? … 시민들 “그런 게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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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공 훈련의 일환으로 대규모 정전대비 훈련이 15일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날 오후 2시 대전시청에서 열린 훈련에서 119 대원들이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던 시민을 구조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15일 오후 2시 정부 과천청사.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불요불급한 전력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력 위기 상황을 대비한 전국적인 정전대비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 내 조명이 일시에 꺼졌고, 난방기와 승강기 가동도 멈췄다. 지식경제부 전력 관련 부서와 한국전력거래소, 전력거래소 등 전력수급 기관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위기 상황을 가정해 기관 간 연락 체계를 확인하고, 단계별 시나리오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등 도상 연습도 펼쳐졌다.

 #같은 시간 서울 중구 명동에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점들은 여전히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난방기를 가동했다. 명동예술극장 옆 300m가량의 이어진 도로에 들어선 32개의 상점·사업장 중 은행지점·약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영업을 했다. 의류매장과 화장품 가게의 스피커에선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고, 건물 외벽의 조명도 여전히 켜져 있었다. 한 의류 매장 직원은 “훈련이 있는지도 몰랐고 전기 사용과 관련해 특별히 지시받은 사항도 없다”고 말했다.

 정전대비 훈련이 실시된 이날 관공서와 일반 상가의 모습은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됐다. 이날 훈련은 심각한 전력난이 예상되는 올겨울을 대비해 민방위 훈련과 함께 실시됐다. 지경부와 한전 등이 만든 훈련 홍보 전단에는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에 빗댄 ‘온국민 전기 모으기 훈련’이란 명칭이 붙었다. 사무실과 상점, 가정 등에서 조명과 전기 난방을 끄는 등 전력 사용을 최대한 줄여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20분간의 훈련 상황은 ‘관(官) 따로, 민(民) 따로’였다. 일반 시민들은 정전 대비 훈련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알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명동의 한 은행 지점 관계자는 “훈련 관련 공문을 받았지만 난방이나 조명을 끄면 고객들의 민원이 들어와 엘리베이터 가동만 중단했다”고 말했다. 인근 지하상가에도 훈련 한 시간 전 안내방송이 나가고 홍보전단도 배포됐지만 전기 사용을 줄이거나 자제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부 관공서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업무를 봤다. 종로구청의 한 직원은 “훈련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특별한 지시가 없어 소등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이날 훈련시간 동안 158만kW의 전력이 절감된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발전소 2기의 생산량과 맞먹고, 제주도민 전체가 쓰는 전력량의 4배 규모다. 그나마 정부와 공기업, 삼성전자·현대제철·포스코 등 대형 기업, 국립 대학 등 협조를 구해 놓은 대형 전력 소비처들이 동참한 결과다. 실제 비상시 절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는 실시간 전력수급 상황을 전하는 ‘양방향 절전 포털’(www.powersave.or.kr)을 23일 개설하는 등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재철 숭실대(전기공학) 교수는 “당장 공급을 늘릴 수 없는 현실에선 절전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면서 “특히 수요가 급격히 몰리는 피크 때는 온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협력해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글=조민근·최선욱·류정화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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