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말 바루기] 마지막 잎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2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서시다. 곱게 물들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이즈음 떠오르는 시 가운데 하나다. 오 헨리의 소설을 번역한 ‘마지막 잎새’도 생각난다.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어느 무명 화가의 희생적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이들 작품에는 모두 ‘잎새’라는 말이 나온다. 조락과 소멸, 그리고 희생을 머금은 아름다운 시어다. 그러나 ‘잎새’는 표준어가 아니다. 시나 노래, 문학작품 등에서 많이 쓰여 친숙한 말이지만 ‘잎사귀’의 충청도 방언, 즉 사투리다.

 ‘잎새’ 대신 ‘잎’이나 ‘잎사귀’ 또는 ‘이파리’란 말을 써야 한다. ‘잎사귀’는 주로 넓적한 잎을 일컫는다. ‘감나무 잎사귀’ ‘넓은 플라타너스 잎사귀’ 등과 같이 사용된다. ‘이파리’는 나무나 풀의 살아 있는 낱 잎을 가리키며, ‘무성한 이파리’ 등처럼 쓰일 때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잎’은 ‘잎새’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잎사귀’나 ‘이파리’는 왠지 크고 빳빳한 느낌이 들어 싫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잎새’에 더 애착이 간다. 얼마 전 표준어를 개정하면서 ‘짜장면’ ‘나래’ ‘내음’ 등 39개 단어가 새로이 표준어로 선정됐지만 어인 일인지 ‘잎새’는 아직 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따라서 ‘잎’ ‘잎사귀’ ‘이파리’ 가운데 하나를 상황에 맞게 쓰는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에서까지 표준어를 강요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식적 글에선 ‘잎새’를 피해야 한다.

배상복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