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나라’서 세계경제 중심에 다시 선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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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중국인들은 19세기 전까지 세상의 중심이 중원(中原)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국의 일방적 억지로 시작된 아편전쟁은 현실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에게 증명해 줬다. 목재로 만들어진 정크선은 서양제 군함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최신형 대포로 무장한 영국군 앞에 청나라 조정(朝廷)은 양보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편전쟁은 서양 열강에 중국이 더 이상 ‘잠자는 동양의 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기는커녕 유럽 열강에 비해 한 세기 이상 뒤처진 봉건왕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 중국인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50여 년간 중국은 서양의 발달한 문명을 수용하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꿈꿨지만 국가의 발전과 양립할 수 없는 구식 가치관을 버리지 못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 지나지 않았던 일본은 중국에 싸움을 걸었다. 중국은 또다시 완패했다. 청일전쟁에서 대패한 뒤 세계 각국에 ‘호구 나라’가 된 중국은 유럽 국가의 요구대로 각종 이권을 넘겨주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중화사상(中華思想)은 비참하게 짓밟히고 중국인은 유럽 침략자의 편견과 멸시를 참아내야 했다. 이에 대한 중국인의 설움과 분노는 유럽인의 횡포에 중국 고유의 가치관과 무술로 대항하는 내용의 영화 ‘황비홍’에 잘 그려져 있다.

 아편전쟁 이후 17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경제의 판도는 당시와는 정반대 국면으로 돌아가고 있다. 과거 몇 세기 동안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이라고 떵떵대던 유럽 국가들이 국가부도를 걱정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제 중국은 선진국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유럽과 중국의 위치 변화는 금융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부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19세기 말 저임금 노무자를 뜻하는 ‘쿨리’라고 놀림받던 중국인은 이제 유럽 국가의 명품을 앞다퉈 사들이는 소비경제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에 유럽인은 국가의 성장을 내팽개친 채 자기 연금이나 챙기려는 사람들로 비치고 있다.

 중원 밖의 또 다른 세상에 놀란 지 한 세기 반 만에 중국은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당시에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중화사상에 기반한 세상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소비와 성장 동력의 중심으로 대우받는다.

 어차피 건실한 경제성장의 근원은 소비와 투자에 있는 법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세계의 중심에 다시 선 중국의 위치가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소비와 성장의 축이 중국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다음 경기 사이클을 주도할 업종과 종목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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