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빌딩이 운집한 일본 도쿄 남부의 히가시신바시(東新橋). 그중 심장부 격인 시오도메(汐留) 시티센터에 소프트뱅크 본사가 있다. 지난달 28일 26층에 있는 손정의(54) 회장 집무실을 찾았다. 일본 1위 부자(올 초 ‘포브스’ 집계)를 만나러 가는 것치곤 절차가 간단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통행증을 받은 것으로 끝. 26층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몇몇 사람 중 눈에 익은 인물이 있었다.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손님들을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하러 나온 이, 손 회장이었다.
잠시 뒤 사실상 그의 집무실인, 30여 명은 들어갈 법한 대회의실에서 손 회장과 마주했다. 장식이라곤 없는 방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손 회장 자리 바로 뒷벽을 온통 차지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전신사진이었다. 손 회장은 올 9월부터 지난주까지 본지에 연재한 ‘손정의 회장의 삶과 경영’을 통해 “료마는 내 인생의 영웅이자 롤 모델”임을 거듭 고백했다. 그는 그렇게 료마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하루 5~10개의 회의를 소화한다. 점심도 저녁도 도시락. 간혹 귀한 손님이 오면 전속 출장요리사가 사무실을 찾아 직접 요리를 낸다고 했다.
손 회장은 “그간 한국 정보기술(IT) 업계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아 왔다. 늘 받기만 했는데 중앙일보 연재 덕에 나 또한 (한국인들에게) 뭔가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처음으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고, 덕분에 비로소 한국과 상호자극을 주고받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게도 없는 사진을 찾아내고, 잊다시피 한 에피소드들까지 끄집어내 놀라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연재가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에피소드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의 삶 자체가 위기와 반전, 실패와 재기로 점철된 한 편의 대하드라마이기 때문이다. 19살 적 ‘50년 인생계획’을 세운 그는 매번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뛰어들었다. 26세, 중증 간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 절망하는 대신 책 4000권을 읽었다. 손자병법을 원용한 ‘제곱병법’을 창안했다. ‘일본에서 온 거품남’이란 비아냥을 무릅쓰고 ‘야후’ 대주주가 됐다. “망해도 좋다”는 각오로 일본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통해 소프트뱅크 모바일을 설립했고, 5년 만에 가입자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기적’도 창출했다.
도쿄=이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