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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을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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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연구소 근처로 이사하니 독서시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전철 다섯 정거장은 책 두어 장 읽으면 후딱 지나간다. 연구소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도 독서지만 원전(原典)이 아닌 교양서를 보는 독서와는 다르다. 만기(萬機)를 친람하는 제왕들은 독서시간이 절대로 부족했다. 그래서 제왕들의 독서를 뜻하는 을야지람(乙夜之覽)·을람(乙覽)이란 말이 생겼다. 을야(乙夜)는 밤 9~11시를 뜻하는데, 이때에야 제왕들은 독서할 시간이 난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소악(蘇鄂)이 편찬한 『두양잡편(杜陽雜編)』에 당나라 문종(文宗)이 “갑야(甲夜·오후 7~9시)에 정사를 살피지 않고, 을야에 독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송(宋)나라 때 큰 편찬사업 중 하나가 『태평어람(太平御覽)』 1000권인데, 송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는 일찍이 “이 책 1000권을 짐은 일년에 모두 읽으려고 하니 하루에 세 권씩 바치게 해서 ‘을야지람(乙夜之覽)’에 대비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조선에서 을람에 가장 열심이었던 임금은 정조였다. 정조가 경연에서 경연관들과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 『일득록(日得錄)』인데, 송나라 효종(孝宗) 때 매일 황제의 말을 기록했던 뜻을 계승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정조는 “나는 정무를 보는 여가 시간에 삼여(三餘)의 공부를 쉬지 않아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따지지 않고 매년 겨울마다 반드시 한 질의 책을 통독(通讀)하곤 했다(『일득록 5권』)”고 말했다.

 정조는 또 책 안 읽는 선비들을 비판하는 말도 남겼다. “선비가 틈틈이 책을 읽는 것은 농사꾼이나 기술자의 상업(常業)과도 같은 것인데, 근래에 들으니 인가(人家)의 자제(子弟)들이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글자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 문풍(文風)이 크게 변할 수 있겠는가(『일득록 4권』)”라고 말했다. 정조는 또 “외물(外物)의 맛은 잠깐 좋지만 오래되면 반드시 싫증 나는데 독서의 맛은 오래될수록 더욱 좋으니 싫증 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국회 예결위에 참석한 장관 등 기관장들이 자정까지 무료하게 기다리며 하품하는 사진을 보았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야 있겠지만 정조가 보았다면 그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호통쳤을 것이다. 세종 때의 사가독서(賜暇讀書·유급 독서휴가)가 역사의 유물만은 아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