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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이 일상이 돼버린 교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4호 27면

얼마 전 TV에서 ‘중·고등학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를 주제로 한 2부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중학생 2명과 고등학생 2명이 4시간 동안 친구들과 주고받은 말을 녹음, 분석해 청소년의 욕설 사용 실태를 짚어보는 내용이었다.

삶과 믿음

최고 기록(?)을 차지한 고교생은 무려 385회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욕설을 섞어 대화를 했다고 한다. 4명의 학생 모두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상관없이 쉴 새 없이 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누구와 싸운 것도 아닌데 평균 194.3회 욕을 했다. 한 시간에 49번 욕을 한 셈이다. 놀라운 점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평범한 학생’과 ‘욕을 잘하는 학생’을 한 명씩 추천받아 실험한 결과라는 점이다. 교실이 그야말로 욕설투성이였다. 청소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뜻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언어가 심각하게 오염된 것에 대해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기에 가정교육과 공교육이 모두 망가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가정에서 부모·자식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학교에서는 성적을 강조하는 입시 교육이 지배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인터넷과 영화, TV가 언어 파괴를 부채질하며 욕설을 쉽게 접하게 만들어 욕설이 일상용어로 통용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전과는 달리 가정에서 비속어를 사용하는 자녀를 보고서도 엄하게 혼을 내지 않고 놔두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도 큰 이유라는 지적도 많다. 성장기에 욕설을 많이 쓰면 뇌 발달과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2부에는 청소년들의 언어 개선 프로젝트 과정을 담았다. 관찰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기가 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욕의 어원 풀이를 통해 뜻도 모른 채 무심코 뱉어냈던 표현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주고, 욕설 상황을 역할극으로 재구성하자 아이들은 점차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어른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버릇이며 몸에 배는 습관이다. 한 번 우리 몸이나 마음에 배어버린 습관은 고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는 욕설과 거친 언어는 상대방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다. 욕설은 타인을 모욕하고 폄하하는 행동이다. 때로는 죽음으로 치닫게 할 정도로 사람의 감정을 격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말을 아끼고 신중함과 자제력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의 교육은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방종이나 분명한 잘못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 있다. 또한 사회도 공동 책임을 갖는다. 바른 언어 사용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언어가 우리 사회의 건강과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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