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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에 땅 늘리지 말라 … 그게 최부잣집 상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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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봉사단 회원 128명이 11일 경북 경주시 교동 ‘경주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의 생가를 방문했다. 회원들이 후손 최용부씨(오른쪽)로부터 최부자의 삶의 철학을 듣고 있다.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농토는 위로 영덕에 아래로는 울주까지 100리에 이르렀습니다.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은 소작농이 어려우면 인심을 베풀어 덕을 쌓으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다른 부자들과 달리 임진왜란 등 혼란기에도 방화나 약탈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11일 오후 경북 경주시 교동 ‘경주 최부자’ 고택에서 집안 후손 최용부(69)씨가 12대 300여 년을 이어간 부(富)의 비결을 들려주었다. 전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등 60여 명은 최부잣집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최씨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소기업 경영자문단에 참여해 중소기업에 무료 컨설팅을 하고 있다.

 만석지기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1568∼1636)에서 재산을 사회에 희사한 12대 최준(1884∼1970)까지를 말한다. 최부자는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최씨는 최부자와 기업 경영을 연결지었다. “찾아오는 손님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경주 바깥 소식을 들은 겁니다. 정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지요.” 권력구조와 왕실의 분위기 등 한양의 사정과 민심, 세세한 물가 등이 망라됐다고 한다.

 이세환(70·전 금호전기 부사장) 자문위원은 “요즘 더불어 잘사는 자본주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최부자는 벌써 300년 전에 그걸 실천했다”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손님에게 일일이 독상을 차려 대접하며 세상 정보를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경영 감각”이라고 평가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는 것도 가훈이었다. 그래서 9대가 진사에 그쳤다. 공부는 하되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또 ‘흉년에 땅을 늘리지 말라’고 훈계해 정당한 부를 강조했다. 12대 최준은 광복 직후인 1947년 농토를 제외한 전 재산을 대구대(현 영남대)에 기부했다. 농토는 토지개혁으로 경작자에게 대부분 돌아갔고 고택은 영남대로 귀속됐다.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의무)는 이렇게 완결됐다.

 김성덕(66·전 연합철강 대표) 경영자문위원장은 “어제 포스코를 가 보니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협력업체의 신뢰를 얻는 등 최부자의 철학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며 “포스코가 1차 협력업체인 동주산업과 함께 해외에 진출해 2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이룬 것은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은 이가 없게 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김이환 전 한국광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며느리에게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히라는 교훈도 새겨야 할 가치가 있다”며 “창업 초기 3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중소기업의 경영자는 ‘성공해도 담담하고 실패해서는 태연히 행동하라’는 최부자의 정신자세(六然)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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