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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목숨이 파리만도 못했던 시절, 그 한편에서 꽃핀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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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철학의 시대
강신주 지음, 사계절
320쪽, 1만5000원

“수천 년 전 고대 중국의 모습은 분명 지금과는 달라 보인다. 하지만 끈덕지게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보면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강신주(44) 박사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철학을 되짚어 보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를 펴내며 한 말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를 저자는 ‘철학의 시대’로 재조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 삶의 어떤 근원적 구조가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이끌어내 보고자 하는 시도다. 총 12권 시리즈의 서론 격인 1권 ‘철학의 시대’와 2권 ‘관중과 공자’를 먼저 펴냈다.

 거듭되는 전쟁 속에서 파리 목숨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남편과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기약 없는 날을 눈물로 지새운 여인들, 길거리에 버려져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던 어린 목숨들…. 제자백가가 직면했던 현실과 오늘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른지를 저자는 새삼 환기시킨다. 전쟁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를 찾는 다양한 길을 제시한 이들이 제자백가라고 했다.

 저자는 유가·묵가·도가·법가 등과 같은 익숙한 표현으로 동양철학의 학파를 나누지 않는다. 그런 학파 분류는 한나라 이후 관료들이 사후적으로 만든 범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파들간의 유사점보다 차이점에 주목한다. 예컨대 맹자나 순자 사이에 놓인 하늘과 땅만큼 먼 사상적 거리를 무시하고 유가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순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개별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관중(管仲)의 사상을 부각시킨 점도 색다르다. 춘추전국시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틀 지운 인물이자 당대 지식인의 이상향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자의 사상이 관중으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면서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유가에 경도된 이들의 관점일 뿐이라고 했다. 중국사상사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양주(楊朱)의 사상도 반(反)국가주의, 혹은 아나키스트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손자와 오자, 묵자와 양주, 상앙과 맹자, 노자와 장자 등이 이어서 출간될 예정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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