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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소설로 읽어볼까요, 워너브라더스가 탐냈던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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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디 데이
김병인 지음, 열림원
418쪽, 1만5000원

이것은 소설일까. 이 책은 소설의 문학적 정의부터 새롭게 환기시킨다.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명기돼 있지만, 문학이 엄밀하게 정의하는 소설의 범주에선 살짝 벗어나 있다. 대립하는 인물의 구도와 또렷한 캐릭터, 그리고 어디선가 효과음이 들릴 것처럼 세밀한 장면 묘사. 숨막힐 듯 흘러가는 빠른 장면 전환은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그러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소설일까.

 해답은 이 소설의 출생 배경에서 되짚을 수 있다. 지은이가 10년 전 집필한 영화 시나리오가 원작이다. 이 시나리오는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인 워너브라더스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화제가 됐다. 연출자로 강제규 감독이 결정됐고, 전 세계에 개봉될 날을 고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은이와 강 감독이 결별하면서 워너의 투자도 없던 일이 됐다. 결국 강 감독은 이 시나리오를 변형시켜 영화 ‘마이웨이(12월 개봉 예정)’를 만들었고, 지은이는 본래 시나리오를 소설로 탈바꿈 시켰다. 이 소설이 기존 소설답지 않은 세밀한 장면 묘사와 흡인력 넘치는 서사력을 지닌 것은 그 시작이 영화 시나리오였기 때문일 테다.

 소설은 조선인 한대식과 일본인 후지와라 요이치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입대한 두 사람은 2차 세계대전의 기막힌 운명에 휩싸여 소련군을 거쳐 독일군으로 군복을 갈아입으며 우정을 쌓아간다. 마침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탈출을 꿈꾸던 두 사람은, 그러나 미군의 상륙작전에 가로막혀 생사가 엇갈리게 된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대식과 살아남은 요이치. 요이치는 조선인 한대식 행새를 하며 죽은 대식의 꿈을 대신 이어간다. 400쪽이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 번 잡은 책을 놓기 힘들다. 그만큼 이 소설(혹은 시나리오)이 지닌 이야기의 흡인력이 어지간하다. 세계사의 파고에 휩쓸린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을 통해 역사의 상처를 보듬는 문제의식도 선명하다. 두 인물의 교차 서술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일정한 문학적 틀을 갖춘 것도 평가할 만하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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