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탈리아발 위기 … 장기전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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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경제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7%를 넘어섰다. 국채 금리 7%는 작은 악재에도 언제 디폴트로 치달을지 모르는 이른바 ‘낭떠러지 위험(cliff risk)’ 수준이다. 이탈리아 재정위기는 그리스와 판박이다. 국가 부채가 1조9000억 유로(약 3000조원)에 이를 만큼 과중한 반면 경기 침체로 인해 세수(稅收)는 쪼그라들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잃은 지 오래다. 그동안 국채를 매입해 주던 유럽중앙은행(ECB)이 난색을 표하면서 이탈리아는 하루아침에 재정위기에 몰린 것이다.

 유로존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가 흔들리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변방의 ‘사건(事件)’이라면, 이탈리아 재정위기는 유로존 심장부가 피습되는 엄청난 ‘사태(事態)’다. 이탈리아는 ‘too big to rescue’라고 할 만큼 독일·프랑스조차 구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이 많다. 여기에다 프랑스·독일 은행들이 이탈리아 채권을 대거 보유하고 있어 이탈리아 쇼크는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염될 수 있다. 이런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이탈리아의 디폴트를 방치하긴 힘들다. 따라서 이탈리아가 내부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하고, 주변국이 공조하는 형태로 수습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탈리아 위기로 어제 서울 금융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코스피 지수는 4.94%나 밀렸고, 원-달러 환율은 1.5%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경색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울 시장을 탈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 이탈리아 쇼크에 직격탄을 맞을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다. 하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질 탓에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간접적인 후폭풍(後爆風)을 거세게 맞고 있다. 일단 단기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대비해 외화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우선이다.

 문제는 이탈리아 사태가 단기간에 수습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과 ECB가 구제조치에 나서도 하루아침에 안정 국면으로 돌아서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내부의 정치상황부터 안갯속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치우친 정당들은 과도정부 구성과 조기총선을 놓고 어지럽게 싸우고 있다. 유럽 국가 사이에도 이탈리아에 거액을 물린 프랑스는 다급한 상황이지만, 독일은 사태를 관망하는 등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따라서 이탈리아 경제위기 해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한국도 긴 안목에서 이탈리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과잉복지와 정치 리더십의 실종, 그리고 저성장이 이어지면 어떤 경제도 버텨낼 수 없다. 연금 개혁을 비롯한 재정 건전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정치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대외개방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면서 잠재성장률 이상의 경제활력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제2의 그리스, 제2의 이탈리아가 될지 모른다.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는 끔찍한 유럽 재정위기를 보면서 한국이 복지 투쟁에 골몰한다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