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변정수 부부 “우리가 ‘맘센터’ 100곳 다 못 지으면 딸들이 지어주겠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요즘 그녀의 연기를 보고 “물이 올랐다”고들 한다. 한 TV 드라마에서 유부남을 빼앗아 결혼했다가 다시 전처에게 뺏기는 철부지 부잣집 딸 역할에 거의 ‘빙의’된 모습이다. 2002년 ‘위기의 남자’에서부터 최근 방영 중인 ‘애정만만세’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에서 그녀가 맡은 역은 대부분 화려한 외모에, 때로는 안하무인일 만큼 당당한 여성이다. 털털하고 ‘쿨’한 그녀의 원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그녀는 또 전공을 살려 의류브랜드 사업을 한다. 예쁜 두 딸을 낳고도 미모와 늘씬한 몸매는 예전 그대로다. 요즘의 ‘알파걸’ ‘미시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하지만 그뿐이라면 그녀를 ‘롤 모델’로 꼽는다는 여성들이 있을 정도는 아닐 거다. 1998년 CF출연료를 북한 아이들 돕기에 기부해 나눔활동을 시작했고,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의 홍보대사로 국내외 아이들을 위해 활동해온 지도 내년이면 꼭 10년째다.

모델 출신 탤런트 변정수(37)씨. 그녀를 지난달 30일 경기도 광주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그녀의 집에서 만났다. 변씨가 큰딸인 채원(13)양과 함께 필리핀에 3박4일 간의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일요일이었다. 변씨는 네팔과 필리핀 등에서 진행 중인 ‘맘프로젝트’와 관련해 함께 고생하는 굿네이버스 직원들을 그날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기자도 합석했다.

맘프로젝트는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마음의 줄임말인 ‘맘’의 중의적 이름으로, 변씨가 ‘엄마의 마음으로 지구촌 빈곤아동을 보듬겠다’며 시작한 일이다. 가난에 갇혀있는 해외의 아이들과 그 가족이 보육·보건·의료·직업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세계 100곳에 커뮤니티센터(맘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녀는 지난해 드라마 ‘파스타’의 출연료 전액에 별도의 후원금을 보태 총 1억원을 굿네이버스에 기부했고, 그 중 일부가 현재 네팔의 맘센터 건립에 사용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변씨의 넘치는 에너지가 그렇게 다방면으로 잘 표출되고 있는 데는 남편 류용운(44)씨의 차분한 외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도 그녀를 더 아름다워지게 만드는 ‘에센스’였다. 방에서 낮잠을 자던 둘째 딸 정원(5)이가 깨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 엄마다.

-첫 가족봉사를 2005년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했지요?

변정수(이하 변)=굿네이버스 아동학대방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어요. 결혼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갈까 생각했는데, 남편이 그것보다 봉사활동을 가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굿네이버스에 문의했죠. 마침 방글라데시 사업장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길래 합류하게 된 거예요.

류용운(이하 류)=당시 ‘리마인드 웨딩’이 유행이었어요. 결혼기념일에 결혼식을 다시 한번 하는 거 말예요. 저희도 그걸 하려고 했어요. 워낙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당시 친하게 지내던 분들은 대부분 저희 결혼식을 못 보셨거든요. 그래서 리마인드 결혼식을 해서 축의금을 다 받자, 그리고 그 축의금을 그분들 이름으로 모두 기부하자, 그런 계획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 촬영 스케줄 때문에 그걸 못하게 돼서 ‘그럼 해외 봉사활동을 같이 가보자’고 했던 거예요.

-그래도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잖아요.

변=한 번 현장에 가서 내가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나면 누구라도 행동을 안 할 수가 없을 거예요.

류=그리고 (나눔활동을 같이 하면) 부부 사이가 좋아져요. 왜, ‘도움을 주러 갔다가 도움을 받았다’고들 얘기하잖아요. 빈말이 아니라 저희 부부가 딱 그랬어요. 처음 방글라데시에 같이 가서 둘 다 충격을 크게 받고 느낀 게 많다보니 그 얘기를 자꾸 하게 됐어요. 사실 결혼 10년이 넘으면 자식 얘기 말고는 대화할 일이 거의 없는데, 거길 다녀와서 공통 화제가 생긴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 다음해 베트남 봉사 갈 땐 당신이 임신해서 갔네.(웃음)

변=정말 그렇네, 큰 애 낳고 8년 만에.(웃음) 베트남 갈 때 임신 5개월째였으니까.

어린 둘째가 과자 나눠주는 모습에 놀라기도

-임신한 몸으로 해외 오지에 봉사활동을 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죠.

변=지금 생각하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예요.(웃음) 한 번 모기에 잘못 물리면 말라리아에 걸려 태아랑 같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땐 거기 아이들을 빨리 봐야겠다는 마음 뿐이었어요.

류=방글라데시에 처음 해외봉사활동을 떠날 때만 해도 무척 걱정했어요. 오지에, 온통 말라리아 병균이 득실대고, 정글에서 자칫하면 큰 일을 당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겁이 나서, 일곱살 된 채원이도 안 데리고 갔던 거예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우리보다 좀 못 산다 뿐이지. 그래서 베트남 갈 땐 채원이도 데려가고, 이 사람 임신한 거 알면서도 괜찮겠거니 한 거죠.

-그때가 채원양을 데리고 처음 해외봉사활동 간 거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변=처음엔 그곳 아이들을 보고 “쟤들은 학교도 안 가서 좋겠다”고까지 했어요. 그러던 아이가 저절로 달라지는 거예요. 저희는 아무 말 안해줬는데도, “나는 엄마 아빠도 있고 좋은 환경에서 지내니 행복한 것 같다”는 얘기를 먼저 하더라고요.

그게 2007년 케냐에 갔을 때란다. 채원이를 비롯한 세 식구는 그곳 아이들이 불러주는 ‘아리랑’과 ‘하쿠나마타타’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쏟고 왔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굿네이버스의 ‘가족나눔 홍보대사’가 돼, 당시 생후 28개월이던 정원양까지 해외봉사에 합류했다. 변씨는 “인도에 갔는데 정원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더라고요. ‘얘도 뭔가를 느끼는 건가’ 싶어서 깜짝 놀랐죠”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네 식구가 다함께 네팔에 다녀왔다. 네 가족이 결연해 후원하는 해외아동은 모두 30명, 매달 내는 후원금만 100만원이다.

지난해 변정수씨 가족은 다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네팔에 다녀왔다. [사진=굿네이버스(김성진 작가) 제공]

진정성 있다면 널리 알리는 것도 ‘재능 기부’

-두 딸도 그렇게 엄마·아빠를 따라 여러 봉사활동 현장에 다니면서 꼬마 스타가 됐죠?

류=봉사활동을 너무 티내며 하는 것 아니냐고 싫어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남의 눈에 신경쓰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봉사가 맘 먹고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엄마·아빠와 늘 하는 일’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변=전 연예인이니까 직접 해외 현장에 가서 보여주고 그곳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널리 알려주는 게 오히려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재능기부’ 아닐까요.

-맘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변=해외에 가면 그곳 아이들을 위해 운동회나 미술활동을 해주고, 집을 고쳐주거나 화장실과 우물을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비슷한 일을 5년 정도 하다 보니까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류=스스로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고….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맘센터를 만들어주자고 한 거죠. 우리가 직접 봉사활동을 가지 않더라도 그곳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반이 되니까요.

-100개를 짓겠다고, 둘이서 다 못하면 딸들이 해주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류=10개를 짓겠다고 하면 금방 다 지어버릴 수도 있고 몇 개 짓다가 말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100개라고 해두면 기본적으로 50개는 짓게 되겠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평생 그걸 위해 노력하겠지, 하고 생각한 거예요. 듣기에도 100개가 더 좋아 보이잖아요.(웃음)

채원이에게 물어보니 정말 “엄마·아빠가 맘센터 100개 다 못 지으면 (우리가) 마저 짓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변씨 부부는 “우린 늙으면 그 중 한 곳의 센터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자주 얘기한다. 우리한테 찬밥 대우는 안할 것 아니냐”며 웃었다. 인터뷰 사이사이, 변씨 부부는 고기구이에 이어 오뎅국과 우동까지 직접 끓여 굿네이버스 직원들을 챙겨줬다. 언젠가 해외 오지 어딘가에서 맘센터장을 하고 있을 변씨 부부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김정수 기자

▶행복신문 구독 신청 jjlife.joins.com
 문의: 1588-3600
 단체 신청: 02-860-3876
▶굿네이버스 후원 문의 www.gni.kr (1599-030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