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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처연하게 피어난 꽃

중앙일보

입력

목련 이야기를 오늘 마칩니다. 처음에 목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리틀젬이라는 겨울에 피는 목련을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천리포수목원의 리틀젬은 이제 꽃망울을 한참 피어올리고 있습니다. 다음 주인 7월 초쯤에는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리틀젬에 앞서 미국산 목련인 태산목은 이미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지난 6월 23일, 리틀젬의 꽃봉오리와 활짝 핀 태산목의 꽃을 화면에 담아왔습니다. 태산목은 참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데, 가까이 다가서기 어려운 위치에 피어나 있어서, 가까운 화면을 잡지 못해서 아쉽군요.

목련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목련 이야기를 그치기에 앞서 태산목과 리틀젬의 이미지 파일을 띄워 올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목련 꽃 전설

목련은 그 꽃의 분위기에 맞는 슬픈 전설이 전해 옵니다. 많은 신화가 그렇듯 목련의 전설도 못 다 이룬 사랑 이야기입니다. 중국이 원산지인 자목련과 백목련에 얽힌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전해져 옵니다.

사람과 신의 사랑이 가능하던 옛날, 어느 한 나라의 임금에게는 외동 딸인 공주가 있었어요. 공주는 백옥(白玉)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가졌으며, 마음씨 또한 비단결처럼 고왔어요. 공주를 아는 젊은 청년들은 모두 남몰래 공주를 사모했으며 공주와의 사랑을 이루고 싶어했지요. 그러나 공주는 매오로시 북쪽 바다의 사나운 신(神)만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 왕국을 빠져나와 먼 북쪽 바다까지 갔어요. 그러나 공주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찾아간 북쪽 바다의 신은 이미 혼인한 상태였지요.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달은 공주는 그대로 바닷 물결 춤추는 북쪽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가 아내를 가진 자신을 사모한 끝에 목숨을 버렸음을 알게 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를 가엾게 여겨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어요.

사랑스러운 공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이 혼인했다는 까닭임을 알게 된 북쪽 바다의 신은 자신의 혼인에 대해서도 환멸을 느끼게 됐어요. 급기야 북쪽 바다의 신은 아무 죄도 없는 아내에게도 극약을 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아내를 공주의 무덤 곁에 만들어 주었어요.

한편 공주가 왕궁을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신하들을 시켜 공주의 행방을 수소문했지요. 멀지 않아 임금은 공주가 북쪽 바다의 신을 찾아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길을 떠난 뒤, 이루지 못할 사랑에 회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알게 됐어요.

북쪽 바다의 신이 아내의 목숨까지 거둬들였음을 알고는 가엾은 두 여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나게 했어요. 공주의 무덤에서는 살아 생전에 공주의 모습과 같이 희고 아름다운 백목련(白木蓮)이 피어났고 북쪽 바다의 신의 아내가 묻힌 무덤에서는 붉은 색의 자목련(紫木蓮)이 피어났습니다.

모두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의 넋으로 무덤가에 피어난 목련은 죽어서도 북쪽 바다의 신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 북쪽을 바라보고 피어났어요. 공주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공주 꽃이라고도 불리는 목련은 그래서 지금도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난다는 겁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목련은 천리포수목원의 대표적인 수목 중 하나예요. 천리포수목원에는 99년 현재 34종 9변종(variety) 419품종(cultivar), 1천 8백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면 목련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규모인 셈입니다. 1997년에는 천리포수목원에서 세계목련학회를 개최했는데, 학회에 참가한 세계적인 목련 전문가들은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에 대해 극찬했답니다.

올해 그 많은 목련 가운데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목련은 비욘디아라는 품종이었습니다. 흰 색으로 피어나는 비욘디아는 다른 목련 꽃에 비해 꽃 송이가 참 작습니다. 해마다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하는 비욘디아의 꽃 송이는 겨우 10센티미터 정도 크기로 흔히 보는 목련 꽃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봄길 잡이에 나선 다른 나무들이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려 연두 빛으로 겉옷을 바꿔 입는 그때에 비욘디아는 활짝 피었습니다. '환장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표현은 바로 그런 모습에 대 놓고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천리포수목원 총무부장 이규현 님 왈, "우리 수목원에 목련이 한참 피어날 때에는 목련 보러 온 회원들이 여기 저기서 목련 꽃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사무실에서는 회원들의 그 탄성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에요." 과장법이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비욘디아를 바라보니, 향긋한 미소로 '이규현님 말씀이 옳아요'라고 대답하는 듯 했어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 류시화,〈목련〉에서

*목련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고 제5호부터는 '물푸레나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글과 사진=고규홍 Books 편집장(gohkh@joins.com)

그림=이동수(glgrim@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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