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시계를 되돌리는 푸틴의 러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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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후 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언론재벌 총수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 축에 끼였다. 소련 시절 연극 프로듀서였던 그는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적인 막강한 언론제국을 구축했다.

정상급 TV방송, 뉴스 중심의 공세적인 라디오 방송, 일간지, 그리고 주간지(뉴스위크와 협력해 발행된다)
등이 그 언론제국에 포함돼 있다. 구신스키는 또 유대교회 신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러시아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저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적어도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구신스키는 새로운 러시아가 자유 기업·언론 자유·종교 자유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생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가장 지저분한 감옥에 앉아 있던 구신스키는 전혀 다른 정치 흐름의 상징이 됐다.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가 과거의 경찰국가 시절로 급속히 회귀하고 있다는 흐름이다.

지난 13일 스페인 리비에라의 휴양지 별장에서 막 귀국한 구신스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市의 한 TV 방송사에서 국고(國庫)
1천만 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곤 정식으로 기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약 4일간이나 부티르카 구치소에 수감됐다.

지난 16일 오후 석방되자마자 뉴스위크와 가진 독점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며 “내가 투옥된 것은 권력층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월 13일은 보리스 옐친 이후 러시아에 대한 낙관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 푸틴이 옐친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래 서방세계는 스파이 총책 출신의 푸틴을 권력 승계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고 확신하려 애썼다. 푸틴이야말로 공정하면서도 엄정한 법질서 확립과 경제 개혁을 동시에 이룩할 인물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美 국무장관은 푸틴이 러시아의 민주혁명이 시작되던 시절 상트 페테르부르크市 정부에서 근무했던 만큼 그를 “지도적 개혁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 3월 러시아 대통령 선거일 전주(前週)
에 푸틴과 함께 다정하게 오페라를 관람했다. 나중에 블레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前 소련 대통령에 관해 마거릿 대처 前 영국 총리가 했던 말을 환기시키며 푸틴에 대해 “함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낙관론 속에는 “우리의 판단이 맞기를 바란다”는 억지 희망이 내포돼 있었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옐친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던 날 빌 클린턴 美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샌디 버거가 말했듯이 푸틴을 둘러싼 핵심적인 질문은 “과연 그는 민주주의자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틴이 국정(처음에는 총리, 다음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을 맡은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기만 했다.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라디오 리버티 방송의 한 러시아人 기자가 체첸전쟁을 취재하던 중 체첸반군과 함께 이동하면서 그들을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것은 푸틴 치하에서였다. 푸틴은 그 기자가 “도적떼의 편을 들었다”고 비난했다.

그 후 지난 5월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한지 4일 뒤 경찰은 구신스키의 지주회사인 미디어 모스트社 건물을 기습적으로 수색했다. 그것은 일종의 협박이었지만 푸틴은 경찰의 급습이 계획돼 있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푸틴의 주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해 구신스키는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의 신당(한동안 그 정당은 옐친 이후의 정치를 주도할 것처럼 보였다)
과 정치적으로 제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옐친과 그의 가족·측근들은 루슈코프를 불신하고 있던 터라 구신스키가 그쪽으로 기운 것을 ‘배신’으로 간주했다. 그 후 푸틴은 미디어 모스트 산하의 TV방송이 체첸전쟁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에 격분했다.

다른 대다수 재벌총수들처럼 구신스키 역시 옐친의 재선을 지원한 대가로 특혜를 누렸던 터라(일례로 구신스키는 수익성 높은 낮시간 TV 방영권을 받았다)
푸틴의 분노는 특히 컸다.

구신스키 체포 사건은 정치 보복이 얼마나 심하게 행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체첸에서의 잔혹한 전쟁 수행방식과 함께 이번 사건은 푸틴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체포 사건 하루 뒤 신경이 곤두선 재벌총수 18人은 “어제 우리는 민주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푸틴에게 보냈다. 푸틴은 유럽 순방 중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는 구신스키 체포件은 “불쾌한 뉴스”였다며 자신도 사전에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다시 늘어놓았다.

나중에 푸틴은 사태 파악을 위해 신임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구신스키 산하 라디오 방송의 토크쇼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이 신생 러시아의 흔해 빠진 상징인 휴대폰을 푸틴과 검찰총장 모두에게 기증했다고 밝혔다.

세인을 깜짝 놀라게 한 구신스키 체포가 과연 푸틴 모르게 단행됐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현재 크렘린은 경쟁관계에 있는 두 권력집단으로 분열돼 있다.

하나는 푸틴과 가까운 KGB 출신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옐친 패밀리’를 대변하는 집단이다. 후자는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는 재벌총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알렉산드르 볼로신 크렘린 비서실장이 이끌고 있다.

두 집단은 서로를 불신하지만 구신스키를 증오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만일 두 집단 중 어느 한쪽이 푸틴 모르게 구신스키 체포를 배후조종했다면, 푸틴은 가장 신랄한 비판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꼭두각시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구신스키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이 사전에 알았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고, 크렘린 소식통들도 구신스키의 말이 옳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소식통은 구신스키 문제가 그동안 정부 최고위층 수준에서 논의돼 왔다고 말한다. 최고위층이란 구체적으로 푸틴과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FSB(연방보안국·KGB의 후신)
국장, 그리고 KGB 출신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 등을 말한다.

그 소식통들에 따르면 푸틴은 구신스키 체포 명령을 직접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 16일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구신스키는 출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만일 이번 체포 사건이 푸틴의 옛 KGB 동료들이 크렘린 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조짐이라면 그것은 다른 재벌총수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지난주 베레조프스키도 시인했듯이 러시아의 사업 관행상 정부가 작심하고 비리를 캐내려 한다면 어떤 재벌총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모스크바의 영향력있는 언론사 사주의 구속 사건이 단순히 가장 강력한 비판자 한 사람을 제거하려는 푸틴의 시도인지, 아니면 러시아식 여론조작용 공개재판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 것인지에 쏠려 있다. [뉴스위크=Bill Powell 모스크바 지국장, Yevgenia Albat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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