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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타 1위 청야니 PGA선 거리 꼴찌 출전권 줘도 머뭇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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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청야니가 "PGA 투어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가 막상 대회 초청을 받자 부담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발을 뺐다. 청야니가 지난달 21일 LPGA 타이완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티샷 순서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중앙포토]

골프는 복싱이 아니다. 주먹을 주고받지 않는다. 테니스처럼 상대를 향해 총알 같은 서비스를 날리지도, 아이스하키처럼 보디체크를 하지도 않는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양궁이나 볼링 같은 섬세한 기록경기에서 여성들이 이따금 남성보다 좋은 성적을 낸다. 게다가 골프는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큰 게임이다. 퍼트가 똑똑 떨어져 준다면 누구와도 해볼 만하다. 60세가 넘은 톰 왓슨이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에서 우승을 다퉜으니 20대 여성도 남자와 붙어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자골프 투어를 평정한 선수들은 종종 남자의 벽에 도전한다.

꼭 남자를 이기겠다고 대드는 것이 아니라도 남자와 겨뤄보는 것은 이득이 많다. 안니카 소렌스탐은 2003년 PGA 투어에 나가기 위해 근력과 거리를 대폭 늘렸다. 남자 대회에선 하위권에 그쳤지만 이후 LPGA 투어를 확실히 장악했다. 소렌스탐과 미셸 위는 성대결이라는 큰 이슈를 만든 뒤 마케팅 가치가 확 올라갔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청야니(22·대만)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PGA 투어 대회에 나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실제 초청을 받자 발을 뺐다. 남자 대회에 진지하게 도전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를 초청한 푸에르토리코 오픈은 좋은 기회였다. 이 대회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과 같은 주에 열린다. 주요 선수들은 WGC로 가고 B급 선수들이 이 대회에 많이 나온다. 컷 통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런데 왜 발을 뺐을까. 청야니 캠프에서는 나름대로 주판알을 튕겨본 후 말을 바꿨을 것이다.

요즘 투어 코스는 장타자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다. 장타쇼를 벌이는 젊은 선수들이 상위권에 올라야 팬들이 좋아하고 TV 시청률이 오른다. 여자 투어도 그렇다. 청야니가 정교한 한국 선수를 누르고 1위가 된 이유 중 하나는 LPGA 투어의 ‘장타자 프렌들리’ 정책이었다.

그러나 여자 장타 1위 청야니가 PGA 투어로 가면 매우 초라해진다. 청야니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69.9야드다. PGA 투어 기록에 나오는 186명 중 그보다 샷 거리가 짧은 선수는 브라이언 게이(269.8야드) 단 한 명이다. 나머지 185명은 청야니보다 최소 5야드에서 최대 48야드 길다.

물론 샷 거리가 짧다고 해서 컷 통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청야니와 드라이브샷 거리가 비슷한 게이는 올해 24경기 중 18경기에서 컷을 통과했다. 그러나 게이는 드라이브샷 정확도가 PGA 투어 4위다. 청야니의 LPGA 투어 드라이브샷 정확도 기록을 PGA 투어로 가져가면 100위 정도다. 드라이브샷 거리 꼴찌, 정확도 100위로는 경쟁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남자 대회는 러프가 더 길고 그린이 딱딱하다. 그린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볼 만한 것 같지만 남녀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겠다”고 공언했던 미셸 위는 서양에서 14번의 남자 대회에 나가 모두 컷탈락했다. 소렌스탐도 최하위권이었다. 소렌스탐은 컷탈락 이후 “적응이 안 돼서 그렇지 1년에 30차례 이상 PGA 투어에 나간다면 상금 100위권에 들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남자 선수들은 고개를 저었고 일부는 발끈해 내기를 제안했다. 일곱 시즌 PGA 투어에 뛰면서 한 차례도 상금 125위 안에 들지 못하고, 전성기도 넘긴 존 리거라는 선수가 “나와 100만 달러를 걸고 스트로크 경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소렌스탐은 수용하지 않았다.

여성이 남자 대회에서 성공한 예는 있다. 1945년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PGA 투어에 나가 컷을 통과했다. 자하리아스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퍼우먼이었다. 1932년 LA 올림픽 여자 창던지기와 80m 허들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미국 대학 여자농구 베스트 5에 선정됐고 풋볼·테니스·당구·수영·피겨스케이팅 등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여자골프는 대한민국에서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겼다. 박세리는 2003년 KPGA 투어 SBS 프로골프 최강전에서 컷을 통과해 10위에 올랐고, 미셸 위도 2005년 SK텔레콤 오픈에서 23위를 기록했다. 성대결에서 여성의 승리는 남성의 패배다. 국내 투어의 남자 선수들은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한국 남자 골프 치욕의 사건”이라고 분개하는 선수도 여럿 있다. 선수들은 “여자 장타자를 위한 맞춤 코스였고, 결론적으로 여자 선수의 컷 통과 이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조작된 대회”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코스 세팅을 보면 이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박세리와 미셸 위가 룰에 어긋나는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전지훈련에 가서 남녀 엘리트 선수들을 경쟁하게 했을 때 총 길이 500야드 정도의 차이를 주면 비슷한 스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한현희 정관장 골프단 감독은 “거리상으로만 보면 홀당 50야드 정도의 차이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급 남녀 선수의 드라이브샷 거리 차이는 40야드 정도이며 아이언샷 거리 차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감독은 또 “러프가 길수록, 그린이 단단할수록, 코스가 다이내믹할수록 남자 선수가 유리하다”고 했다. 남자 선수들은 힘이 좋아 러프가 길어도 빠져나오기가 쉽고, 스핀을 많이 걸기 때문에 단단한 그린에서도 공을 세울 수 있다. 180야드짜리 해저드를 남자 선수들은 아이언으로 쉽게 넘기는데 여자 선수들에겐 큰 부담이다. 반면 코스가 좁고 섬세할 경우 여자가 유리하고, 그린의 빠르기는 남녀 큰 차이가 없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청야니 같은 여성 최고 선수는 짧고 쉬운 코스에서 남자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PGA 투어에서 청야니를 위해 전장 6600야드에 러프가 매우 짧은 코스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박원 위원은 “남자와 여자의 골프는 다른 게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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