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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드러낸 G20 체제 … 유로존 vs 신흥국 입장차만 확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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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20면

프랑스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둘째 날인 4일(현지시간) 의장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고뇌에 찬 표정으로 회원국 국기가 늘어서 있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칸 로이터=연합뉴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위기 속에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서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 G20 정상회의가 4일(현지시간) 폐막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유로존 위기를 해소할 핵심 방안으로 꼽혔던 IMF 재원 확충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IMF 재원을 늘린다는 원칙적인 합의만 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에 이르지 못했다. IMF 재원은 현재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유로존 위기 해결에는 크게 부족한 규모다. 유로존 정상들은 위기극복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과 IMF를 통한 자금 조달 방안을 추진해왔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유로존 이외의 국가들이 IMF 재원 증액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재원 확충안은 내년 2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IMF 재원 확충 실패한 칸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과 행동계획(액션플랜)에는 중국 위안화의 환율 유연성을 확대하고, 독일·중국·브라질 등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내수 진작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구속력이 없어 문자 그대로 ‘립 서비스’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5일 G20 정상회의 결과를 평가하는 논평에서 “우리는 선진 경제국들이 스스로 위기에 대처할 용기를 발휘하기 바란다”며 “유럽 스스로 재정적자 해소, 투명한 재정정책 등을 통해 위기 해결에 공헌해야 한다”고 유럽을 압박했다. 위안화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 의장을 맡았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 각국이 유럽 재정위기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며 회의 성과를 포장했다. 하지만 로이터는 “위기의 유로존이 언어적 지원(verbal support)은 받았지만, 실제 새 돈을 끌어들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AFP도 “세계 경제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IMF 군자금(war chest)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실질적인 자금 지원이 아니라 립 서비스만 나온 데에는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국가들의 부정적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IMF 재원 확대에 찬성하고 돈을 낼 용의가 있지만, 이 돈이 유로존 지원을 위해 쓰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국은 EU 회원국지만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도 “유럽 국가의 구제금융 기금에 출연할 생각이 없다”며 “유럽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해결수단을 갖고 있는, 그리고 가져야만 하는 부유한 국가들”이라고 꼬집었다.

그리스 다음으로 취약한 국가로 지목되는 이탈리아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G20 정상회의 결과가 전해지면서 이탈리아의 10년 물 국채수익률이 이날 6.4%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국채수익률이 6.5% 이상이면 위험 수준이고, 7%를 넘기면 이자를 갚지 못하는 국가부도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최근 수년간의 저성장과 국내총생산(GDP)의 약 120%에 달하는 국가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UBI방카 등 이탈리아 24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연금제도 등의 개혁에 실패하면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G20정상회의에서도 그리스보다는 이탈리아의 위기와 대책이 집중 논의됐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재정적자 감축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이 유로존의 위기가 역내의 다른 국가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거명했다. 유로존 3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는 막대한 채무와 정부 내부의 분열, 정치권의 정쟁에 따른 혼란으로 경제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이 이탈리아를 압박했지만, 정작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위기를 막을 대책이 있다”며 “IMF 구제금융도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국채 수익률이 오르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가는 열풍” 이라며 “레스토랑은 꽉 찼고, 비행기와 리조트 역시 모두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 구제금융은 거절했지만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IMF가 이탈리아의 연금·규제개혁 추진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탈리아의 개혁 추진 상황을 점검할 팀은 이미 꾸려졌다. EU는 모니터링팀의 활동을 통해 채권금리 등이 안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위기가 현실화되면 유로존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G20 정상들은 이번에 예비적 유동성지원제도(PLL·Precautionary and Liquidity Line)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 제도의 첫 수혜국이 이탈리아가 유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LL은 IMF의 예방대출제도(PCL)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위기가 심화되면 스페인 등 또 다른 취약 국가뿐 아니라 프랑스까지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는 다시 유로존의 다른 국가로 파급되고 유럽을 넘어 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도미노를 막기 위해 G20은 이탈리아 문제의 진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음 G20 정상회의는 내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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