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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기부를 통한 절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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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22면

고액자산가가 늘면서 부의 이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이와 관련한 다양한 절세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진화해온 세법은 이미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고 있어 틈새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현장에서 축적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 첨단 기술로 무장한 세무당국을 상대로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 많지 않다. 은밀히 전수돼온 웬만한 ‘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증여나 상속처럼 세무당국이 특별히 주시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함지원의 스마트 세(稅)테크

이럴 때는 오히려 정공법이 도움이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가진 재산이 많다면 자식에게 물려줄 몫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될 일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기부다. 세금의 본질을 생각할 때 기부는 단순히 선행의 의미를 넘어 절세와도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 그만큼 과세표준이 줄어들고 자연히 내야 할 세금도 적어지게 마련이다.

기부는 능동적 납세자로서의 지위 회복이기도 하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그 돈의 사용에 관한 권한을 모두 위탁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돈 사용처와 목적을 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가 H씨는 2002년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식 90%(180억원 상당)와 현금 3억여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러나 세무당국은 이에 대해 “주식 기부는 현행법상 무상 증여에 해당된다”며 재단에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에 불복한 H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항소심까지 가는 공방 끝에 ‘유감스럽지만’ 당국의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선의에서 비롯된 행위가 세금폭탄으로 돌아왔으니 당사자로서는 황당할 법도 하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것은 상속세법 및 증여세법에 명시된 조항 때문이다. 출연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경우 공익법인이 그 총수의 5%(성실 공익법인의 경우 10%)를 초과해 취득·보유하면 그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5% 과세’ 조항은 공익재단 등을 통한 편법증여를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실제로 편법증여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 조항 때문에 고액자산가들의 통 큰 기부선언에 괜한 의혹의 시선이 쏠리기도 한다.
최근 모 대기업 회장은 5000억원 상당의 사재를 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기부를 약속한 회사 지분 7.02% 중 절반인 3.51%만 우선 재단에 전달하고 나머지 지분은 나중에 증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이왕 기부하는 것이라면 한 번에 주지 왜 몇 차례에 나눠 증여하느냐며 기부선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5% 과세조항에 따른 거액의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공익재단 관계자와 관련 전문가들은 그간 ‘5% 과세’ 조항을 주식기부를 가로막는 족쇄로 지목하며 완화 내지 철폐를 요구해 왔다. 그때마다 정부 당국은 경영권 대물림이나 편법적 기업지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해왔다. 대기업에서 설립한 재단이 해당 기업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재단의 운영진 역시 기업주와 가까운 사람들이 이사 등 주요 관계자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눔의 선의에 대해 일부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기부에 수반되는 과세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세금의 공익적 기능을 개인이 직접 수행한다는 기부의 본질적 의미를 생각할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야 할 세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납부하지 말고 내 의지와 가치관에 따라 쓰고 싶은 곳에 쓴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하면 절세의 목적 외에 정신적 만족감이 높아지는 부수효과도 거둘 수 있다.

평소 자신이 힘을 보태고 싶었던 분야를 돌아보자. 빈곤 퇴치, 실업 해소, 교육 환경 개선, 다문화 가정 돕기 등 많은 분야가 있다. 기업이 주체가 돼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메세나는 여론으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삼영그룹 창업주인 이중환 회장이 2002년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교육재단을 설립한 ‘사건’은 기부문화가 척박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후 매년 사재 출연을 거듭해 현재 재단의 출연금 누적 규모는 6500억원에 육박한다. 기부천사로 유명한 가수 김장훈씨는 현재까지 약 110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일동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최근 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위해 개인 돈 100억 엔(약 1450억원)을 쾌척했다.

만약 이 기부자들이 본인의 재산을 그대로 자손에게 물려주려 했다면 유산의 50%는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을 것이다. 이 경우 땀 흘려 모은 재산이 공익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누리는 만족감을 맛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기부의 목적물도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다. 돈을 기부할 수도 있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 현물을 내어놓을 수도 있다.

기부의 형식 또한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금액이 크지 않고 재단 운영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덜고 싶다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실천해 줄 수 있는 단체를 찾아 직접 기부금을 납부하면 된다. 기부금의 규모가 크다면 자신이 직접 재단을 설립해 뜻을 펼칠 수도 있다. 내놓을 돈이 많지 않다고 해서 재단을 설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단 설립이 대기업 오너 등 일부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재단 설립에 복잡한 절차나 까다로운 자격 조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내 법규상 재단 설립 시 출자금 액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 일부 인허가가 필요한 특수 목적 재단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목적을 가진 재단법인을 세우려 할 때 특별한 제약은 없다. 실제로 1억원 미만의 출자금으로 재단을 세워 자선사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 정부 유관부처에서는 재단에 들어가는 출자금 액수가 현실적인지 여부 정도를 평가하고 조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일정한 조건과 한도하에서 공익재단에 대한 출자금과 기부금에 대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부여해 준다.

물론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재단법인에 특혜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단법인의 설립과 운영을 상속세 회피수단으로 악용하거나 법인의 재산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세금 추징이나 해산명령 등의 조치가 따를 수 있다. 기부와 관련한 여러 절차는 선한 목적이나 의도와 별개로 법적인 잣대와 절세의 관점에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함지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에서 법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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