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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마 대학생’ 수사해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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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황운하
서울 송파경찰서장

건강한 변은 황금색이다. 장이 좋지 않으면 묽거나 단단하며, 위에 문제가 생기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보면 사회의 건강을 가늠할 수 있다. 특정 범죄가 급증하거나 특정 계층이 범죄의 주체 또는 대상으로 떠오른다면 특정 부위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거마 대학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불법 다단계 문제가 대표적이다. 송파 지역에는 5000여 명의 젊은이가 불법 다단계업체의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집에 15여 명의 남녀가 합숙하며 하위 판매원들을 끌어들였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이란 이중고에 시달려온 학생들은 ‘고액 수당’이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시키는 대로 수백만원씩 대출받아 물건을 샀다. 몇 개월 후 이들에게 남은 것은 인간관계의 파탄과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뿐이었다.

 일용직 노동자는 일상의 탈출구가 로또밖에 없다고 여긴다. 아르바이트로는 앞날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기댈 곳도 ‘대박의 꿈’뿐이다. 자식이 불법 다단계에 빠졌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찾아온 부모가 많았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은 돈을 벌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6개월간 경찰은 단속과 수사를 병행하면서 유관기관·시민단체와 함께 계도활동을 했다. 그사이 불법 업체 대표 등 145명을 붙잡았고, 거마 대학생은 10분의 1로 줄었다. 기업의 도움으로 이들에게 새로운 직장도 알선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경찰은 수술을 통해 종기를 제거하고 연고를 발라줄 수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종기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은 사회의 몫이다. 정직하게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사회의 건강을 되찾는 길이다.

황운하 서울 송파경찰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