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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국가이익에 역주행하는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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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민주당이 반대하는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 조항이 아니라 FTA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들은 민노당과 좌파시민단체에 이끌려 한·미관계의 강화를 저지하는 큰 전선에 나선 것 같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수출이 늘고 경제사정이 호전되어 사회의 양극화 현상과 2040 세대의 불만이 완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2000년 3%에서 2.4%로 떨어진 사실, 세계적으로 2100개의 투자관련 협정이 ISD를 채택하고 있다는 통계, 투자자-국가 소송을 ‘재판’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인 123명 중 한국인과 미국인의 숫자가 같아 미국이 ‘재판’을 좌우할 수 없다는 사실,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과 공중보건·안전 등 공공복지 부문은 ISD에서 제외돼 우리 공공정책이 약화될 위험이 없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민노당의 들러리로 전락한 민주당은 보고 싶지 않은 것에는 눈을 감고 정략적인 계산에서 국민들을 선동해 국회의사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선봉에는 한때의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섰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는 한국 경제에 좋은 것,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의 계산이 내년 총선·대선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 문제가 더 복잡하다. 정동영은 FTA 반대를 당내에서의 실지회복(失地回復)의 발판으로 삼고, 손학규는 좌파 시민단체들과 군소야당과 공동전선을 폄으로써 야권통합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한다. 정치인의 권력욕에 국가이익이 멍드는 비극적인 사례다.

 FTA의 직접적인 혜택은 한국경제에 돌아간다. 일자리가 35만 개 정도 늘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 농업 전체로는 앞으로 15년 사이에 12조원, 연간 8000억원의 생산감소가 예상된다. 그래서 정부는 2008년부터 10년간 22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피해보상 대책을 시작했다. 피해보상에 대한 직불 기준도 민주당의 요구대로 생산감소를 전년 대비 20%에서 10%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가경제와 농어민을 걱정한다면 ISD 조항으로 한·미 FTA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피해보상의 그물망에 빠진 것이 없는지 살피고,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의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여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보선 승리는 당리·당략과 지도부 각자의 권력추구를 위해 국가이익을 팽개치라는 면허증이 아니다. 10·26 서울 승리에 도취되어 2040 세대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압도적으로 경제적인 불안과 불만에서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경제 잘 되는 일에 발목을 잡는다면 내년 총선·대선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민주당이 알아야 할 게 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뿐 아니라 동북아 전략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은 각자의 동북아 전략에 따라 한국과의 FTA 체결을 서두르고 싶어 한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구상하는 한·미·일 3각전략구도에서 한국을 분리·이탈시키는 지렛대로 한·중 FTA를 바란다. 일본은 한·미·일 경제·안보협력 강화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 지도력 부재와 자연재해로 침몰하는 일본의 재기를 노린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과 FTA를 먼저 체결하려고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는 것은 한국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주변환경이다. 4강의 한복판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과 미들파워의 위치가 진가를 발휘할 기회다. 이렇게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지평을 넓히는 차원을 넘어 동북아 경제·안정 전략이 걸린 중대사다. 그것은 크게는 우리의 전체적인 미래 국가전략과 직결된다. 한·미 FTA가 좌초되면 한·중, 한·일 FTA는 고사하고 앞으로 어떤 국제협약도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가 없다. 한·미 FTA 비준 실패로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 수출 증가,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날아가면 민주당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한국의 국제적인 신뢰추락은 어쩔 것인가.

 한나라당의 전략부재는 민주당에 힘을 보탠다. 그때는 몰랐다고 잡아뗄 만큼 충분히 비상식적인 사람들에게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작품이고, 손학규·정동영·김진표 당신들도 그걸 환영하지 않았느냐는 단순논리를 들이밀어도 소용없다. 한나라당은 168석의 다수의석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다수 국민에 의지하여 ‘창조적 자멸’의 각오로 FTA 비준을 성사시켜야 한다. 민주당의 살길은 그 좁은 우물 안의 자기부정적 혼란 상태를 벗어나 민주당의 당리에 우선하는 국가이익에 귀순하는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