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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 … 도나우강변 집 뒤뜰에 한옥 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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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독일 파사우에 있는 라이너 쿤체의 집 뒤뜰에 세워질 한국식 정자의 조감도.
2005년 10월 서울대에서 열린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는 라이너 쿤체 시인(오른쪽)과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독일의 대표적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82·Reiner Kunze)가 독일 남부 파사우의 도나우 강변에 있는 자택 뒤뜰에 조선시대의 정자를 짓는다.

 쿤체는 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동료 시인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강변을 감상하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정자에 ‘시는 모든 민족을 연결해주는 도구’라는 간판도 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5년 방문했던 한국은 열정적인 나라였다”며 “독일과 같은 분단의 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 애틋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쿤체는 1977년 공산당 치하였던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와 그 해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갖고도 정부 지시로 자물쇠 수리공으로 일했다. 당국의 억압 속에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국경 넘어 체코에까지 퍼져나갔다. 그의 시에 반해 체코에서 편지를 보내온 지금의 아내와 사랑을 일구게 됐다.

 쿤체에게 정자를 짓자고 제안한 사람은 서울대 전영애(60·독어독문학) 교수다. 전 교수는 1994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 문학 강연회에서 쿤체와 인연을 맺었다.

2005년 10월에는 전 교수의 초청으로 쿤체가 서울대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쿤체는 한국 방문 당시 1주일 동안 느낀 것을 시로 쓰기도 했다.

 올해 초 전 교수가 시인에게 “조선시대 정자를 도나우 강변에 있는 시인의 뒤뜰에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쿤체는 “시인의 집에 정자가 놓이면 그곳을 찾는 예술가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전 교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전 교수는 자신의 작업실을 지어 준 한옥 전문업체 이연한옥의 조전환(43) 대표에게 정자 건축을 의뢰했다. 국내에서 부재를 다듬은 뒤 배편으로 독일 현지로 옮겨져 건립될 정자는 이르면 다음 달 완성된다. 폭 3.9m, 높이 2.4m의 정자는 창덕궁 내 서고인 운경거(韻磬居)를 본뜬 것이다. 정자 옆에는 쿤체가 “한국 친구들에게, 600년 전 정몽주의 꼿꼿한 바른 걸음을 기리며”라고 쓴 시비가 선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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